
- 수영성 남문 부산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 입구에 수영성 남문(水營城南門)이 있습니다.수영성 남문은 지금 수영성 남문이 있는 곳에서 약 200m 떨어진 골목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원래 자리에서 옮겨져 옛 수영초등학교(현재 신익아파트 자리) 정문으로 쓰였습니다. 1962년 6월에 수영초등학교가 옮겨간 뒤에는 방치되었다가, 1960년대 말에 미군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수영성(水營城)은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남문을 주작문(朱雀門)이라 하였고,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합니다. 이 성문은 홍예문(虹霓門)입니다. 지금은 홍예(虹霓)와 홍예 주춧돌, 그리고 좌우로 홍예 주춧돌과 거의 같은 높이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 하마비 수영성 남문 앞에 하마비(下馬碑..

- 정과정 유적지 맞은편 아파트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수영강변에 센텀수영강변 e편한세상 2차아파트가 있습니다. 이 아파트 맞은편의 나지막한 언덕에 정과정 유적지(鄭瓜亭遺跡地)가 있습니다. - 정과정 정과정(鄭瓜亭)은 고려시대 문인 정서(鄭敍)가 모함을 받아 의종 5년(1151년)에서 의종 11년(1157년)까지 귀양살이를 한 곳입니다. 정과정과 관련된 기록은 에서 찾을 수 있는데, '동래부(東萊府) 남쪽 10리에 있으며, 정자는 없으나 그 터는 남아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이 개발되어 원래의 지형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정과정은 수영하수처리장에서 고려제강 본사에 이르는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정가정 시비 정과정 유적지에 있는 정과정 시비입니다. 정서가 임금이 불러..

- 충렬사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을 비롯한 92명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인 충렬사(忠烈詞)가 있습니다. 충렬사는 선조 38년(1605년)에 동래부사 윤훤(尹喧)이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弄珠山, 현재 동래경찰서 자리)에 송상현의 위패를 봉안한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입니다. 인조 2년(1624년)에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소줄당 소줄당(昭崒堂)입니다. 안락서원의 강당으로 쓰였던 건물입니다. '소줄당(昭崒堂)'이라는 당호는 한유(韓愈)의 에서 유래합니다. 중에 '소호일월(昭乎日月) 부족위명(不..

- 현경문 부산 화지산(華池山) 자락에 동래 정씨(東萊鄭氏) 대종중 소유의 화지공원(華池公園)이 있습니다. 화지공원에 정묘사(鄭墓祠)가 있습니다. 정묘사는 동래 정씨 사당(祠堂)을 말합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솟을삼문 현경문(顯景門)을 지나야 합니다. - 정묘사로 가는 길 정묘사로 가는 길은 호젓한 숲길입니다. - 정치화 청덕거사비 정묘사로 가는 도중 길옆에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정치화 청덕거사비(鄭致和淸德去思碑)입니다. 이 비는 조선 후기 동래부사 정치화(鄭致和)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입니다. 비의 앞면에 '부사 정공치화 청덕거사비(府使鄭公致和淸德去思碑)'라는 비제(碑題)가 적혀 있습니다. 그 좌측에 '9세손 행부사(行府使) 정인학(鄭寅學)이 을미년(乙未年)에 세웠다'고 적혀 있습니다. 을미년은 ..

- 전촌리 팽나무 경주시 감포읍 전촌리(典村里)는 동해의 청정해역을 끼고 있는 해안마을입니다. 전촌리 지명은 '법동(法洞)'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가장 중심이며 큰 마을이었던 법동에서 착안하여 같은 의미로 '전촌(典村)'이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촌리는 전촌1리와 전촌2리로 되어 있습니다. 전촌1리에는 성두(城頭)마을, 고성(高城)마을, 구름마을(雲村), 거마장(巨馬場, 소바짐)이 있고, 전촌2리에는 장진마을과 새마을이 있습니다. - 전촌리 팽나무 전촌2리는 과거 전촌해수욕장으로 불리던 솔밭해변으로 유명합니다. 이곳 장진마을은 마을을 처음 개척할 때 긴 갈대밭뿐이었다고 하여 장진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마을은 전촌초등학교가 있었던 마을입니다. 다른 마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