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강재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下坪里)는 호랑산과 자산 사이의 골짜기를 흐르는 관하천을 따라 좌우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 마을은 모은정, 수무동, 월촌 등이 있습니다. 모은정(몬담)은 본 마을이라 할 수 있는데, 비교적 평지에 마을이 있습니다. 수무동은 언덕 위쪽이고, 길에서 보면 마을이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숨어 있습니다. 월촌(月村, 너부리)은 산기슭의 경사도가 급한 곳에 있습니다. 마을로 가는 길이 지그재그로 오르면서도 가파릅니다. 월촌 마을 뒤쪽에 월강재(月岡齋)가 있습니다. - 월강재 월강재는 김해김씨 월촌 종중 재실로, 기암(機菴) 김명하(金命夏)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기암 김명하는 낙안당(樂安堂) 김세중(金世中, 1484~1553)의 6세손입니다. 그는 97세에 돌아갔으며..
- 미동 마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書院里)는 자계서원(紫溪書院)이 있는 마을로, 1400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 김극일(金克一)이 입향하여 정착한 김해김씨 집성촌입니다. 예전 지명은 운계리(雲溪里)이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죽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신원이 회복되어 탁영 김일손 등을 배향한 서원이 '자계(紫溪)'라는 사액(賜額)을 받고부터 서원리(書院里)가 되었습니다. 탁영 김일손이 무오사화로 극형을 당해 죽자,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이 핏빛으로 물들어 3일간 역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마을은 미동(美洞)과 신기(新基) 등이 있습니다. - 자계서원 자계서원(紫溪書院)은 서원리 미동 마을의 야산 자락 아래에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 호화리 은행나무 청도군 매전면 호화리(好化里)는 운문면에서 내려온 동창천(운문천)의 좌우에 걸쳐 있으며, 넓은 농경지가 있습니다. 이곳 지명은 호고동(好古洞)과 동화동(東化洞)이 합쳐지면서 호고동의 '호(好)' 자와 동화동의 '화(化)' 자를 따서 붙여졌습니다. 마을은 호화1리(호고동)와 호화2리(동화동)가 있습니다. 호화1리는 자미산을 등지고 있으며, 동쪽에 동창천이 흘러 마을 앞의 농경지가 비옥합니다. 호화2리는 구만산 아랫자락에 있는데, 서쪽에 동창천과 임해 있지만 마을 아래쪽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가 있습니다. - 호화리 은행나무 호화1리 마을 앞 빨래터 부근에 수령 300~400여 년의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호화리 은행나무입니다. - 호화리 은행나무 1981년 청도군에서 발행한 에 호..
- 운곡서원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王信里) 왕신저수지 동쪽 골짜기 안쪽에 운곡서원(雲谷書院)이 있습니다. 운곡서원은 정조 8년(1784년)에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 고려태사(高麗太師) 권행(權幸)의 공적을 추모하여 추원사(追遠祠)를 세우고 위패를 모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죽림(竹林) 권산해(權山海, 1403~1456)와 구봉(龜峰) 권덕린(權德麟, 1529~1573)을 추가 배향하였고, 운곡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철폐되었습니다. 1930년 유허지(遺墟址)에 설단(設壇)하여 향사를 지냈으며, 1976년에 서원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은행나무와 유연정 서원 남쪽에 노거수 은행나무와 유연..
- 장산서원 옛터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守城里)는 임고면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오지입니다. 이곳은 북쪽에 운주산(雲柱山)이 있고, 동쪽에 봉좌산(鳳座山)이 있으며, 남쪽에 천장산(天掌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고천(臨皐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내려갑니다. 운주산 산세가 험해 임진왜란 때 왜적의 방어에 유리하여 김백암(金柏岩) 장군이 병사들을 인솔하여 성을 쌓고 진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수성(守城)'이라는 지명은 산성을 쌓고 왜적을 방어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마을은 구마이(구만), 장산, 원터골(원터, 원기), 배태(배이터, 배이태, 배기리), 실리(새마, 새각단, 신리), 주마각단(중리), 영지이(영정, 영전), 터골(터꼴, 기곡) 등이 있습니다. 기곡(基谷)은 수성리에서 가장 처음 생긴 마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