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답동 석조보살상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2016.7.3.) 7년 전 이맘때 소답동 석조보살상을 찾아 소답동 뒷산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소답동 석조보살상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소답주민운동장 공사로 석조보살상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는 완전히 변해 있었습니다. - 소답동 석조보살상(사진 출처: 두피디아) 소답주민운동장 공사가 시작되기 전 소답동 석조보살상의 모습입니다. - 멀리서 바라본 소답동 석조보살상(사진 출처: 이무기님,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3개월 전)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3개월 전 소답동 석조보살상이 있던 곳의 모습입니다.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 석조보살상이 있습니다. - 소답동 석조보살상(사진 출처: 이무기님,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3개월 전)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 능지탑 경주 낭산(狼山) 서쪽 자락에 있는 능지탑(陵只塔, 陵旨塔)입니다. 능지탑을 능시탑(陵屍塔, 陵示塔), 연화탑(蓮華塔)이라고도 합니다. 명동조(名同條)에 능지라는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능지탑이란 이름은 능지마을에 있는 탑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 예전의 능지탑 예전의 능지탑입니다. 당시 능지탑은 한 변이 5∼6m 되는 방형 평면이었고, 높이 3∼4m 되는 고분 모양으로 솟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꽃잎이 새겨진 커다란 판석들이 중첩되어 무너진 채 있었으며, 신라 왕릉 호석에서 볼 수 있는 십이지상도 있었습니다. 능지탑은 일찍이 파손되어 방치되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철도부설공사를 하면서 필요한 석재를 능지탑 상부를 헐어서 반출하였다고 전합니다. - 발굴조사 당시 소조불 파편..

- 산길 김해 임호공원에서 산길을 따라 임호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숲이 우거져 있고, 능선으로 올라갈 때까지만 조금 가파르고 대부분 평탄하여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임호산(林虎山, 176m)은 산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여 이렇게 불립니다. 그리고 호랑이가 벌린 입처럼 너무 험악하게 생겼다고 해서 악산(惡山)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유민산(流民山), 봉명산(鳳鳴山), 안민산(安民山)이라 하기도 합니다. 참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습니다. - 임호산에서 바라본 김해평야 능선에 오른 후 걷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남쪽을 바라봅니다. 넓은 김해평야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멀리 마주 보이는 산은 금병산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나지막한 산은 칠산재가 있는 칠산입니다. - 임호정 산..

- 영지 와 에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전설은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건할 때 석가탑 축조를 위하여 초청되어온 백제 장인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불국사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로 4km쯤 떨어진 곳에 영지(影池)라는 저수지가 있습니다. 이 저수지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 속에 나오는 영지(影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 영지를 전설 속의 영지로 보기에는 서로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 영지 석조여래좌상 어쨌든 영지 부근 솔숲에 석불이 하나 있습니다. 영지 석불입니다. - 영지 석조여래좌상 석불은 불상,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부분의 손상이 심한 편입니다. - 영지 석조여래좌상 영지 석불은 몇 가지 특..

-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신불산 자락에 등억온천단지가 있습니다. 온천 단지인지 모텔 단지인지 조금 헷갈리는 단지 한가운데에 절터가 있습니다. 간월사지(澗月寺址)입니다. 절터 주위로 신불산, 취서산, 가지산이 둘러싸고 있고, 북쪽으로는 작괘천이 흘러 태화강으로 이어집니다. 절터는 석남사, 통도사, 표충사와도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간월사(澗月寺)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세워 18세기 말까지 유지되었으나, 그 뒤 어떤 사정으로 폐사되었다고 합니다. -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절터 보호각 안에 석불이 있습니다.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었던 탓에 광배는 없어졌고, 대좌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