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화유산

창원 소답동 석조보살상

sky_lover_ 2023. 7. 14. 13:49

- 소답동 석조보살상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2016.7.3.)

 

7년 전 이맘때 소답동 석조보살상을 찾아 소답동 뒷산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소답동 석조보살상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소답주민운동장 공사로 석조보살상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는 완전히 변해 있었습니다.

 

- 소답동 석조보살상(사진 출처: 두피디아)

 

소답주민운동장 공사가 시작되기 전 소답동 석조보살상의 모습입니다.

 

- 멀리서 바라본 소답동 석조보살상(사진 출처: 이무기님,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3개월 전)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3개월 전 소답동 석조보살상이 있던 곳의 모습입니다.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 석조보살상이 있습니다.

 

소답동 석조보살상(사진 출처: 이무기님,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3개월 전)

 

소답주민운동장 공사 3개월 전 소답동 석조보살상의 모습입니다.

 

소답주민운동장은 2010년 도시계획시설 결정 등 행정절차와 편입토지 보상협의를 거쳐 2015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2017년 12월에 준공되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소답주민운동장 공사와 관련하여 2011년 11월 28일 자로 창원시에 소답동 석조보살상의 보존 대책을 마련하라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창원시가 2015년 12월 공사를 시작하면서 소답동 석조보살상의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후에 알려진 바로는 창원시 공무원 ㄱ 씨가 소유자를 찾지 못해 공사가 지연될 것을 우려해 보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임의로 석조보살상을 주위 야산에 묻었습니다.

 

- 소답동 석조보살상

 

소답동 석조보살상은 지금 창원대학교 박물관 뜰에 있습니다. 이곳에 소답동 석조보살상이 있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8년 7월 25일 백유선(당시 서울 보성중학교 교감) 씨가 소답동 석조보살상을 직접 보러 왔다가 석조보살상이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석조보살상이 있던 자리에는 소답주민운동장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석조보살상이 사라진 것에 대해 창원시에 문의하였고, 당시 창원시는 석조보살상의 행방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2018년 9월 3일에 경남도민일보에 보도되었고, 이에 창원시는 소답동 석조보살상이 있는 곳을 조사하여 소답주민운동장 주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2018년 9월 5일 창원시는 운동장 공사 담당 공무원과 포클레인 작업 기사를 불러 석조보살상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장 인근 길가를 다시 파 석조보살상을 찾아냈습니다. 발견 당시 이 석조보살상은 예상대로 땅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 후 이 석조보살상은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세척·보존 처리를 거쳤고, 최근에 박물관 뜰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소답동 석조보살상

 

소답동 석조보살상은 광배와 한 돌로 만들어져 네모난 불감 속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소답동 석조보살상

 

이 석조보살상은 본래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 주민들에 의해 백옥산의 서쪽 자락(소답동 뒷산)으로 옮겨졌고, 산신으로 모셔져 기도를 올리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 부분

 

석조보살상은 네모꼴의 머리에 높이가 낮고 무늬가 새겨진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마모가 심해 이목구비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광배는 배 모양입니다. 두 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음각하였고, 그 바깥으로 화염문을 새겼습니다.

 

- 부분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머리에 비해 어깨가 좁은 편입니다.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 동그란 봉오리가 달린 꽃줄기를 쥐고 있으며, 왼손은 꽃줄기 끝에 닿아 있습니다. 가슴 앞에는 희미하게 영락 장식이 있습니다.

 

- 부분

 

천의는 여러 겹으로 내려와 오른쪽 다리에서 반원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앉은 자세는 왼쪽 다리는 가부좌를 하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렸습니다. 얼핏 보면 반가부좌(半跏趺坐)처럼 보이지만, 유희좌(遊戱坐)에 더 가깝습니다.

 

- 감실(후면)

 

감실 후면입니다.

 

소답동 석조보살상

 

원통형 보관을 쓰고 꽃봉오리를 쥔 보살상은 고려시대 전기에 다수 만들어져 이 석조보살상의 제작 시기를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좌의 형태와 옷 주름의 표현 등이 고려시대와 맞지 않고, 불감이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양식인 점들을 고려하여 일제강점기 이후 고려시대 불상을 모방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23.7.9.)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