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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효사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 소현(小見) 마을 입구에 문효사(文孝祠)가 있습니다.

 

문효사는 신라 때 효자 손순(孫順)과 부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문효사 정문은 홍효문(弘孝門)입니다. 손순이 흥덕왕이 마련해준 소현리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남사리 북골에 있는 옛집에 절을 만들었는데, 그 절이 홍효사(弘孝寺)입니다. 홍효문(弘孝門)은 바로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소현 마을의 옛 이름은 '순우정(順友亭)'입니다. 마을에 손순의 이름을 딴 정자가 있었는데,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선조의 이름자를 마을 이름에 붙이는 것을 싫어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지일(智日)을 병합하여 '소현(小見)'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도성인 경주에서 보면 이 마을과 질메산이 작게 보여서 '소현'이라 하였다고도 합니다.

 

- 손순유허지

 

문효사 바로 옆에 손순유허지(孫順遺墟地)가 있습니다.

 

이곳에 손순의 효행을 기리는 유허비(遺墟碑)가 있는 비각이 있습니다.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은 손순의 효행에 감동하여 소현리에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비각이 있는 자리가 그 집터입니다.

 

- 비각

 

비각에는 '신라효자문효공손순유허비(新羅孝子文孝公孫順遺墟碑)'라고 새긴 비가 있습니다. 조선 말기의 학자 허전(許傳)이 쓴 유허비가 1970년께 파괴되어 이후에 지금의 비를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손순의 효행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손순매아(孫順埋兒)'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순(孫順, 고본(古本)에는 손순(孫舜)이라 하였다)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다. 아버지가 죽자, 처와 함께 남의 집에 고용되어 일을 하여 쌀을 받아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이다.

손순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매번 어머니 음식을 빼앗아 먹었다. 손순은 이를 곤란하게 여겨 그의 처에게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는데, 그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배고픔이 얼마나 심하겠소? 우선 이 아이를 묻어 버리고 어머니의 배를 채워 드립시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아이를 등에 업고 취산(醉山, 모량리 서북쪽에 있다) 북쪽 들판으로 가서 땅을 파다가 문득 돌로 만들어진 종을 얻었는데, 매우 기이하였다. 
부부가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잠깐 나무 위에 걸어 놓고 시험 삼아 그것을 쳤더니 그 소리가 은은하여 사랑스러웠다.

 

아내가 말하기를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도 이 아이의 복인 듯하니 묻지 맙시다."라고 하였다. 남편도 그렇게 여겨 아이와 종을 업고 집으로 돌아와 종을 들보에 매달고 두드리니 소리가 궁궐까지 들렸다. 

흥덕왕(興德王)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기를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리는데, 맑으면서 멀리 들리니 비할 데가 없소. 빨리 조사하시오."라고 하였다. 왕의 사자(使者)가 그 집에 가서 조사하고 사실을 구체적으로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말하기를 "옛날 곽거(郭巨)가 아들을 묻으니 하늘이 금솥을 내렸고, 지금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고 하니 땅에서 돌종이 솟구쳤다. 전세의 효와 후세의 효는 천지(天地)에 같은 귀감이다."라고 하며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 50섬을 주어 지극한 효를 숭상하게 하였다.

손순은 옛집을 내어 절을 만들었는데, 홍효사(弘孝寺)라고 부르고 돌종을 안치하였다. 진성왕(眞聖王) 때 후백제의 도적 떼가 그 마을에 들어가서 돌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았다. 그 돌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完乎坪)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잘못 전해져서 지량평(枝良坪)이라고 한다.

 

신라 때 손순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기 어린아이를 땅에 묻으려고 하였던 것을 지극한 효(孝)라고 하였습니다. 효(孝)와 충(忠)은 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조 시대에서 효(孝)가 강조되었던 것도 이런 점이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이든 시대에 따라  가치 판단이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손순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소현리 회화나무

 

손순유허지에 노거수 회화나무와 팽나무가 있습니다. 

 

회화나무는 일찍이 고결한 선비의 집안에 심어졌던 길상목(吉祥木)으로 영험한 기운을 가진 신목(神木)이고, 팽나무는 다산과 행복, 안녕을 기원하는 행운목(幸運木)입니다.

- 밑동

 

회화나무 밑동입니다. 곧게 위로 뻗은 줄기가 시원스럽습니다.

 

- 소현리 회화나무

 

위로 뻗은 회화나무를 올려다봅니다. 나뭇가지마다 싱그러운 초록 잎이 달려 있습니다.

 

- 소현리 회화나무

 

수령: 350년.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1m
소재지: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 623.

 

- 소현리 팽나무

 

담장 바로 옆에 팽나무가 있습니다. 크기와 수령이 회화나무와 거의 같습니다.

 

- 소현리 팽나무

 

수령: 350년.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0.9m
소재지: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 623.

 

(202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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