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탑 경북 포항시 북구의 서남쪽 지역에 기계면(杞溪面)이 있습니다. 기계면은 조선 전기(前期)의 대표적인 지리지인 에 "기계현(杞溪縣)은 본시 모혜현(芼兮縣) 또는 화계현(化鷄縣)인데, 경덕왕이 기계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기계(杞溪)의 '杞(기)'는 강변에서 자리는 고리버들을 뜻하고, '溪(계)'는 골짜기를 뜻합니다. 기계면은 일찍이 고리버들이 우거진 골짜기 동네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계면에 있는 문성리(文星里)는 원씨(元氏)가 들어와 살게 되면서 한때 원문동이라 불렀다 하며, 그 후 남양 홍씨(南陽洪氏) 집성촌이 되었습니다. 너른 농토로 번창하던 마을이 기계천의 범람으로 농토가 유실되고 쇠퇴해져 갈 때 하늘에 문창성((文窓星)이 나타나 ..
- 하곡리 은행나무 경북 경주시 안강읍의 북서쪽 지역에 하곡리(霞谷里)가 있습니다.하곡리는 약 300년 전 하(河)씨와 정극후(鄭克後)란 분이 이룬 마을입니다. 처음엔 지형이 마치 불 '화(火)'자 모양이라 하여 적화오리(赤火五里: 노실, 야일, 너더리, 두류, 딱실의 다섯 마을)라 하였는데, 마을에 화재가 빈번해지자 재앙을 면하기 위해 마을 앞에 웅덩이를 팠습니다. 그러자 주산인 삼성산(三聖山)에 항상 안개가 걷힐 날이 없으므로 마을 이름을 '노을실'이라 하다가 노실(露室, 蘆室)의 뜻을 따서 하곡(霞谷)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는, 해가 질 때 안강에서 서쪽 하늘을 보면 노을이 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노을실'이라 하다가 하곡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 하곡리 은행나무 하곡리 마을..
- 독락당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장년 시절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자옥산 골짜기에 7년을 은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살던 집의 사랑채가 독락당(獨樂堂)입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낙향한 이듬해인 1532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건물 정면에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 글씨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썼습니다. - 독락당 향나무 독락당 앞뜰 담장 옆에 향나무 한 그루가 독야청청(獨也靑靑)하게 서 있습니다. - 독락당 향나무 독락당 향나무 모습입니다. - 독락당 향나무 위로 높게 자란 향나무 모습이 볼수록 시원스럽습니다. - 독락당 향나무 이 향나무는 회재 이언적의 아들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 1516~1568)이 1534년(중..
- 잠계 이전인 기적비 비각 경주 독락당(獨樂堂) 주차장 앞쪽에 비각이 있습니다. 잠계 이전인 기적비(潛溪李全仁記蹟碑)가 있는 비각입니다.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 1516~1568)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유일한 핏줄이기는 하나 서자(庶子)입니다. '잠계(潛溪)'는 독락당의 북쪽 상류의 계곡(지금 장산서원 위쪽)을 말합니다. 그는 효심이 지극하여 회재 이언적이 유배지 평안도 강계에 있을 때 부친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껏 모시며 학문을 익혔고, 독락당을 지키며 자손의 번영과 가학(家學)을 계승하였습니다. 그의 효심은 大韓忠義孝烈錄)>에 올라가 있습니다. 1553년 11월 23일에 귀양지에서 회재 이언적이 사망하자 잠계는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시신을 운구해 왔습니다. 그는 12월 1..
- 구평리 느티나무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의 남쪽 지역에 구평리(邱坪里)가 있습니다. 구평리는 닭벼슬산에서 발원한 내를 따라 있는 긴 골짜기와 동쪽 해안선을 따라 'ㄱ' 자로 길게 마을이 있습니다. 자연 마을은 새바위(鳥岩), 구평(邱坪), 도구정(都邱亭) 등이 있습니다. - 구평리 느티나무 구평(邱坪)은 바닷가에 있는 마을입니다. 옛날 성지(性智)라는 풍수가가 이곳 지형이 평평한 구릉이라고 하여 '구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곳 지형이 거북 등과 같은 형상이라고 하여 구반(龜盤)이라고도 합니다. - 구평리 느티나무 구평 마을 도롯가에 구평리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 구평리 느티나무 구평리 느티나무 모습입니다. - 구평리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군데군데 상처 흔적이 있습니다. - 구평리 느티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