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조창유지 비석군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옛 삼랑진 다리에서 서쪽으로 좁은 강변 길을 따라가면 2010년에 새로 놓인 경전선 철길이 머리 위로 지나갑니다. 그 철길 아래에 있는 마을이 상부 마을입니다. 상부 마을은 삼랑창(三浪倉)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 마을 뒷산인 후포산을 '뒤기미' 또는 '뒷개뫼'라고 부르는데, 그곳 오우정(五友亭)으로 올라가는 언덕의 꺾어지는 길목에 비석들이 있습니다. 후조창유지 비석군(後漕倉遺址碑石群)입니다. 삼랑창(三浪倉)을 '후조창(後漕倉)'이라 한 것은 조창(漕倉)이 앞쪽 바닷가에 있지 않고 뒤(後)쪽 내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선정비 후조창유지 비석군의 비석은 이곳 높은 관리들의 선정비(善政碑)입니다. 이 비석들 가운데 부사(府使) 홍이간(洪履簡, 1753 ~1827)..
- 만어사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牛谷) 마을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동안 올라가면 만어산(萬魚山, 670m) 정상 아래에 만어사(萬魚寺)가 있습니다. 만어사 경석(磬石)은 얼음골, 표충비와 함께 밀양 3대 신비로 꼽힙니다. - 만어사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어산불영(魚山佛影)' 조에 김수로왕이 가야국 내 옥지(玉池)의 독룡(毒龍)과 만어산 다섯 나찰녀(羅刹女)와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만어사는 고려 명종 10년(1180년)에 비로소 세워졌다고 하였습니다. 만어사는 천년고찰(千年古刹)입니다. 그러나 지금 만어사는 그렇게 고색창연하지는 않습니다. - 만어사 삼층석탑 대웅전 앞쪽 뜰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석탑은 단층 기단부 위에 3층 탑신부를 올렸습니다. - 만어사 삼층석탑 만어사 삼층석탑은..
- 삼랑진역 급수탑 경남 밀양시의 남쪽 지역에 삼랑진읍(三浪津邑)이 있습니다. 삼랑진(三浪津)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있었던 삼랑창(三浪倉)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삼랑(三浪)'은 밀양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세 줄기 강물이 만나 물결이 이는 곳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삼랑진(三浪津)은 한때 번창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영남대로와 수운이 만나는 곳으로 낙동강 연안에서 아주 큰 포구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밀양, 창녕, 김해 등을 비롯한 인근 6개 고을의 전세(田稅)와 대동미(大同米)를 수납하고 운송하는 최대 집산지인 삼랑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경부선과 경전선이 갈라지는 철도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지나간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삼..
- 상대전 마을 경북 청도군 이서면(伊西面)의 남서쪽 지역에 대전리(大田里)가 있습니다. 대전리는 '한밭'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한밭'은 골이 깊고 길며 들이 넓어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자연 마을은 상대전(上大田)과 하대전(下大田)이 있습니다. 대전리는 의흥 예씨(義興芮氏) 집성촌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신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 정3품)으로 수행한 임란 공신 예극양(芮克讓)이 7년 전쟁이 끝난 후 이서국(伊西國)의 옛터인 이곳에 정착하면서 의흥 예씨 집성촌이 되었습니다. 예극양은 의흥 예씨 시조 예낙전(芮樂全)의 11세손입니다. - 대전리 은행나무 상대전 마을에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대전리 은행나무입니다. - 대전리 은행나무대전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
- 적천사 은행나무 경북 청도 남산(南山) 동쪽 자락에 원리(院里)가 있습니다. 그곳에 적천사(碩川寺)가 있습니다. 적천사는 신라 문무왕 4년(664년)에 원효대사가 토굴로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적천사에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적천사의 3대 명물로 괘불, 사천왕상, 은행나무를 꼽는데, 대부분 사람은 적천사 하면 은행나무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 적천사 은행나무 적천사 은행나무는 천왕문 앞뜰에 있습니다. - 적천사 은행나무 적천사 은행나무 모습입니다. - 적천사 은행나무 적천사 은행나무와 마주하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은행나무는 인상적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보조국사가 친히 심었다고 전합니다.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적천사를 중건한 후 짚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