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양 마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德陽里)는 햇볕 받는 곳이라 하여 양촌(陽村)이라 하기도 하고, 햇볕을 더 많이 받도록 가양(加陽)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곳 마을은 가양, 덕암(근촌), 송월, 싱매(승마)가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마을은 가양입니다. 가양(加陽)은 덕양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으며, 옛 지명은 '가을양(加乙陽)'입니다. 이곳은 1709년 이전에는 밀양 땅이었습니다. 에는 "제내리(堤內里)였고, 동쪽에 극락제(極樂堤)가 있으며,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옛 탑이 남아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덕양리 삼층석탑 가양 마을 입구에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이 당산나무 옆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덕양리(덕양동) 삼층석탑입니다. 덕양리 삼층석탑은 에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남아 있었다는 탑입니다..
- 천군동 삼층석탑 경주시 천군동(千軍洞)은 북쪽으로 보문호와 접해 있으면서 남쪽으로 긴 골짜기로 이루어진 남소북대(南小北大)의 부채꼴 지형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지명은 신라 20대 자비왕(慈悲王, 재위 458~479)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명활산성에 약 천 명의 군사가 주둔하여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유사시에는 성에 올라가 나라를 지킨 곳이라 하여 '천군(千軍)'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초에는 이곳의 내(川)가 활(弓)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천궁(川弓)'이라 하였습니다. 1913년경 일제강점기에 '천궁(川弓)'이 천궁(天宮)과 그 음이 동일하여 마을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천군(千軍)'으로 고쳤는데, 당시 마을 사람들이 '군(軍)' 자가 마을 이름으로 좋지 않다고 여러 차례 반대..
- 정각리 느티나무 정각리(正覺里)는 영천시 최북단 골짜기에 있습니다. 그만큼 깊은 외딴곳입니다. 이곳은 북쪽에 보현산이 우뚝 솟아 있고, 보현산에서 발원한 횡계천의 상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산 높고 골 깊은 심심산곡(深深山谷)입니다. 이곳 지명은 불교와 관련이 깊습니다. 불교에서 정각(正覺)은 바른 깨달음, 즉 헛된 정신의 홀림(妄惑)을 단멸(斷滅)한 여래의 참되고 바른 각지(覺智)를 말합니다. 정각리의 가장 북쪽에 절골이 있습니다. 절골은 골짜기 끝 마을입니다. 사곡(寺谷)이라고도 합니다. 이곳 지명은 신라 말엽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 정각리 느티나무 절골 들머리에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 정각리 느티나무 나무 앞에 제단이 있습니다. 나무는 당산나무입니다. - 정..
- 미탄사지 삼층석탑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에서 남쪽으로 250m쯤 떨어진 들판에 절터가 있습니다. 미탄사지(味呑寺址)입니다. 지금 절터에는 석탑 1기가 있습니다. - 미탄사지 삼층석탑 미탄사라는 절 이름은 기이(紀異)편 신라시조혁거세왕(新羅始祖赫居世王)조에 나옵니다.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사로육촌(斯盧六村) 가운데 네 번째 촌인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을 설명하는 구절에서 언급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네 번째 촌은 취산진지촌이다. 마을 어른은 지백호(智伯虎)라 하여 처음 화산(花山)에 내려왔다. 이가 본피부 최씨(本彼部崔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일러서 통선부(通仙部)라고 하니, 시파(柴杷) 등 동남촌(東南村)이 여기에 속하였다. 최치원..
- 갈계리 삼층석탑 경남 거창군 북상면 소재지에서 전북 무주 방향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송계사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2km 정도 가면 오른쪽 도로변에 석탑이 있습니다. 갈계리 삼층석탑(葛溪里三層石塔)입니다. 탑이 있는 곳은 절터로, '탑불'(塔佛)이라고 불리는 마을로부터 200m쯤 떨어져 있습니다. '탑불'이란 마을 이름도 이 탑과 절터로 인해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 갈계리 삼층석탑 지금 절터는 대부분 논밭 등의 경작지로 변해 옛 절의 규모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옛 절에 대한 내력을 전해주는 자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탑이 어느 절의 것인지, 어느 시대에 세워진 것인지 자세하게 알 수 없습니다. - 갈계리 삼층석탑 탑은 통일신라 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한 이층기단의 삼층석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