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송 이촌리 오층석탑 청송문화관광재단 유교문화전시체험관 중앙 뜰에 있는 청송 이촌리 오층석탑(靑松理村里五層石塔)입니다.이 탑은 원래 청송군 진보면 이촌리 서북쪽 고개에 있었던 구층석탑이라고 합니다. 1942년에 진보읍 이촌리 마을회관 앞으로 옮겨지면서 오층석탑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2008년에 청송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겨졌고, 2021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습니다. - 청송 이촌리 오층석탑 기단부는 땅에 묻혀 있어 일부만 노출되어 있습니다. 탑신부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은 1층에서는 상당히 높으나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지붕돌은 지나치게 두터워 보이고, 낙수면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 남아 있습니다. 탑은 전체..
- 가양 마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德陽里)는 햇볕 받는 곳이라 하여 양촌(陽村)이라 하기도 하고, 햇볕을 더 많이 받도록 가양(加陽)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곳 마을은 가양, 덕암(근촌), 송월, 싱매(승마)가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마을은 가양입니다. 가양(加陽)은 덕양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으며, 옛 지명은 '가을양(加乙陽)'입니다. 이곳은 1709년 이전에는 밀양 땅이었습니다. 에는 "제내리(堤內里)였고, 동쪽에 극락제(極樂堤)가 있으며,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옛 탑이 남아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덕양리 삼층석탑 가양 마을 입구에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이 당산나무 옆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덕양리(덕양동) 삼층석탑입니다. 덕양리 삼층석탑은 에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남아 있었다는 탑입니다..
- 천군동 삼층석탑 경주시 천군동(千軍洞)은 북쪽으로 보문호와 접해 있으면서 남쪽으로 긴 골짜기로 이루어진 남소북대(南小北大)의 부채꼴 지형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지명은 신라 20대 자비왕(慈悲王, 재위 458~479)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명활산성에 약 천 명의 군사가 주둔하여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유사시에는 성에 올라가 나라를 지킨 곳이라 하여 '천군(千軍)'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초에는 이곳의 내(川)가 활(弓)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천궁(川弓)'이라 하였습니다. 1913년경 일제강점기에 '천궁(川弓)'이 천궁(天宮)과 그 음이 동일하여 마을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천군(千軍)'으로 고쳤는데, 당시 마을 사람들이 '군(軍)' 자가 마을 이름으로 좋지 않다고 여러 차례 반대..
- 정각리 느티나무 정각리(正覺里)는 영천시 최북단 골짜기에 있습니다. 그만큼 깊은 외딴곳입니다. 이곳은 북쪽에 보현산이 우뚝 솟아 있고, 보현산에서 발원한 횡계천의 상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산 높고 골 깊은 심심산곡(深深山谷)입니다. 이곳 지명은 불교와 관련이 깊습니다. 불교에서 정각(正覺)은 바른 깨달음, 즉 헛된 정신의 홀림(妄惑)을 단멸(斷滅)한 여래의 참되고 바른 각지(覺智)를 말합니다. 정각리의 가장 북쪽에 절골이 있습니다. 절골은 골짜기 끝 마을입니다. 사곡(寺谷)이라고도 합니다. 이곳 지명은 신라 말엽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 정각리 느티나무 절골 들머리에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 정각리 느티나무 나무 앞에 제단이 있습니다. 나무는 당산나무입니다. - 정..
- 미탄사지 삼층석탑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에서 남쪽으로 250m쯤 떨어진 들판에 절터가 있습니다. 미탄사지(味呑寺址)입니다. 지금 절터에는 석탑 1기가 있습니다. - 미탄사지 삼층석탑 미탄사라는 절 이름은 기이(紀異)편 신라시조혁거세왕(新羅始祖赫居世王)조에 나옵니다.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사로육촌(斯盧六村) 가운데 네 번째 촌인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을 설명하는 구절에서 언급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네 번째 촌은 취산진지촌이다. 마을 어른은 지백호(智伯虎)라 하여 처음 화산(花山)에 내려왔다. 이가 본피부 최씨(本彼部崔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일러서 통선부(通仙部)라고 하니, 시파(柴杷) 등 동남촌(東南村)이 여기에 속하였다. 최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