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담사 남원(南原) 원천천(元川川)이 요천(蓼川)으로 흘러들기 전에 한 번 크게 굽이쳐 흘러갑니다. 그곳에 용담사(龍潭寺)가 있습니다. 용담사는 백제 성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설이나 유물로 보아 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절이 세워지기 이전에 부근의 용담천 깊은 물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면서 온갖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에 신라 말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절을 짓고 용담사라 한 뒤부터 이무기의 행패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고려 때 중창하였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 정유재란 때 스러진 뒤 사세를 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칠층석탑 경내로 들어서면 칠층석탑이 제일 먼저 맞습니다. 탑은 높이가 10m쯤 됩니다. 너무 길쭉하고 ..

- 과립리 석불입상 남원(南原) 시내에서 운봉(雲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이백면 과립리가 있습니다. 이백면(二白面)은 백암면(白岩面)과 백파면(白波面)의 흰 '白'자 두 개를 합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과립리(科笠里)는 원래 백암면 지역인데, 1914년에 백암면의 과리(科里)와 입촌(笠村), 그리고 백파면의 파과(波科) 일부를 병합하여 과립리가 되면서 이백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이곳 이백면 면사무소 부근에 커다란 석불입상이 있습니다. 과립리 석불입상입니다. - 과립리 석불입상 과립리 석불입상은 전북 지역 최대 규모에 속하는 원각상(圓刻像)의 대형 석불입상입니다. 신체 비례에서 몸체보다 머리가 크고 얼굴 윤곽이 방형에 가까워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 부분 머리는 높이 솟은 육계에 소발(素髮)입니다. 눈은 ..

- 반석리 석불좌상 보성 반석리 천연염색공예관 뒤편 야산에 홀로 앉아 있는 석불이 있습니다. 반석리 석불좌상입니다. - 반석리 석불좌상 이 석불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석불은 얼핏 봐도 지방화된 토속적 양식이 뚜렷합니다. - 석탑 부재 석불 앞에 석탑 부재(기단 갑석?)로 보이는 석재가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조촐한 불단 역할을 합니다. - 반석리 석불좌상 두광은 두 줄의 둥근 양각선 테두리 안에 연꽃잎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꽃잎과 꽃잎 사이에 중간 잎이 있어 마치 연화문 막새기와를 모방한 것처럼 보입니다. 신광은 두광과는 달리 한 줄의 양각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습니다. - 부분 옆 모습입니다. 머리 부분이 다른 신체에 비해 더 양감이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 부분 머리는 소발(..

- 용산리 석조 보살상 고흥 두원면 사무소에서 남쪽으로 약 340m 떨어진 야산 구릉에 특이한 자세의 보살상이 있습니다. - 용산리 석조 보살상 이름은 용산리 석조 보살상(龍山里石造菩薩像)입니다. - 용산리 석조 보살상 보살상은 연화대좌( 蓮花臺座)와 몸체가 한 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살상의 자세가 대좌에 걸터앉은 특이한 모습입니다. - 부분 머리 위에 보관을 썼습니다. 보관의 앞면 가운데에 화불(化佛) 1구가 있습니다. - 부분 얼굴은 마모가 심하여 그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과 눈썹이 사각형에 가까우며, 조용한 선정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코는 훼손되어 아랫부분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양쪽 귀는 크고 둔중하게 생겼으며 그 끝이 어깨 위에 닿았습니다. - 용산리 석조 보..

- 서정리 비로자나불좌상 포항 서정1리 마을회관 앞 길옆에 석불 하나가 볼품없이 놓여 있습니다. 서정리 비로자나불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부근 절터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왔다고 합니다. 절터는 천령산 남동쪽 능선의 서쪽 아래 일대로, 서정1리 마을회관 앞 일대의 밭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을 동네 사람들은 '아방사지'라고 합니다. - 서정리 비로자나불좌상 불상은 머리가 없어졌고, 나머지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입니다. - 서정리 비로자나불좌상 법의는 통견으로, 옷 주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 서정리 비로자나불좌상 수인은 지권인(智拳印)을 하였습니다. - 뒷모습 뒷모습입니다. 오른쪽 어깨 너머로 넘긴 옷 주름은 수직으로, 왼쪽 어깨 너머로 넘긴 옷 주름은 길게 사선(斜線)으로 표현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