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양산 물금에서 원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얼마 가다가 좁은 내리막길을 따라 낙동강 쪽으로 내려가면 오봉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용화사(龍華寺)에 이르게 됩니다. 이 길은 좁고 가팔라서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합니다. 이 길 말고 다른 길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물금취수장을 지나 경부선 철로 아래의 굴다리를 지나면 됩니다. 이곳 대웅전에 오래된 석불이 있습니다.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입니다. - 화불 광배는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입니다. 두광과 신광은 두 줄의 선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두광 안에는 팔판연화문(八瓣蓮華文)이 있고, 그 바깥으로 불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있습니다. 광배에는 윗부분에 화불 1구와... - 비천상 가운데 부분 양 측면에 비천상(飛天像)과, 그리고 아랫부분 양 측면에 공..

- 심적정사 응진전 산청 심적사(深寂寺)는 웅석봉 북쪽의 깊은 골짜기에 있습니다. 통일신라 말기인 경순왕 3년(929년)에 세워졌다고 전하지만, 세운 사람이나 절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심적사는 6·25전쟁 때 불에 탄 후 절을 산청읍내로 옮기게 되었는데, 지금의 심적정사(深寂精舍)입니다. 당시 심적사의 불상은 동봉(東峰) 스님이 삼봉산(三峯山)의 동룡굴에 잠시 모셔두었고, 후에 심적정사 나한전(지금의 응진전)으로 옮겨와 봉안하였습니다. - 심적정사 석조불상군 심적정사 석조불상군의 모습입니다. 응진전에 모셔진 불상은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16나한상 등 모두 21기입니다. - 석조석가모니불좌상 석가모니불좌상은 중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인 나발에 작은 상투 모..

- 백암리 절터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상촌마을의 골짜기 안쪽에 상촌저수지가 있습니다. 그 아래에 절터가 있습니다. 백엄사지(伯嚴寺址)로 추정되는 절터입니다. 이곳을 대동사지(大同寺址) 또는 백암사지(伯巖寺址)라고 하기도 합니다. 절터 일부는 경작지로 변하였고... - 백암리 석불 절터에는 석불과 석등이 있습니다. 석불은 석등과 함께 도괴되어 있던 것을 지금 위치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 백암리 석불 백엄사(伯嚴寺)라는 절 이름은 신라 시대에 백흔(伯欣)과 엄흔(嚴欣)이 살던 집을 희사하여 절을 세워 두 사람의 이름 가운데 한 글자씩을 따서 지어졌다고 전합니다. 의 「백엄사석탑사리(伯嚴寺石塔舍利)」조에 백엄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개운(開運) 3년 병오(丙午, 946년) 10월 29일..

- 굴불사 사면석불 경주 소금강산 서쪽 자락에 있는 굴불사지(掘佛寺址)를 찾아갑니다. 굴불사(堀佛寺)는 백률사(栢栗寺) 아래에 있었던 절입니다. 절 이름은 '부처를 땅에서 파낸 절'이란 뜻이 있습니다. 지금 굴불사의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고, 커다란 돌에 새겨진 사방불만 남아 있습니다. 권3 탑상(塔像)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掘佛山萬佛山)'조를 보면, 굴불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에 거동하여 산 밑에 이르렀을 때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그곳을 파게 했더니 큰 돌이 나왔는데 사방불(四方佛)이 새겨져 있었다. 왕은 이곳에 절을 세우고 굴불사(掘佛寺)라고 하였다. 지금은 잘못 전해져서 굴석사(堀石寺)라고 한다. 이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 시..

- 오층석탑 만복사지를 세 지역으로 나누었을 때, 서쪽 지역에 석인상과 석조대좌(서금당지)가, 가운데 지역에 당간지주, 목탑지, 북금당지가, 동쪽 지역에 동금당지, 오층석탑, 석불입상이 있습니다. 오층석탑은 동금당지와 석불입상 보호각 사이에 있습니다. 탑은 절이 창건된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오층석탑 탑의 높이는 5.75m입니다. 지대석 위에 단층 기단부가, 그 위에 5층 탑신부가 놓여 있습니다. 탑신부보다 기단부가 왜소합니다. 탑신부는 1층 몸돌이 특히 높고, 2층 몸돌부터 1층 몸돌 크기의 1/3로 줄었습니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평박하며, 추녀 끝이 약간 들려 있습니다. 2층부터 별개의 받침돌이 몸돌과 지붕돌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런 형태는 고려 시대 석탑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