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천서원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에 있는 한천서원(寒泉書院)은 충렬공(忠烈公) 전이갑(全以甲, ?~927)과 충강공(忠康公) 전의갑(全義甲, ?~927)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전이갑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고려 태조 10년(927년)에 견훤의 침공을 받은 신라를 돕기 위하여 왕건과 함께 출정하여 팔공산 동수에서 싸우던 중 순절하였습니다. 전의갑은 전이갑의 동생으로, 동수 전투에서 형과 함께 순절하였습니다. 한천서원의 건립 시기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에는 조선 헌종 6년(1840년), 와 에는 헌종 13년(1847년), 서원에 소장된 와 등의 현판에는 헌종 4년(1838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천서원은 흥선대원군 집권기 때인 고종 8년(1871년)에 훼철되었습니다. 1908년에 후손들..
- 명동리 은행나무 거제시 연초면 명동리(明洞里)는 신라시대 죽토부곡(竹吐部曲)이었습니다. 고려 원종 12년(1271년)에 왜구의 침범으로 주민 모두가 거창현(居昌縣)에 속하는 가조현(加祚縣)으로 피난 갔다가, 조선 세종 4년(1422년)에 본래의 부곡(部曲)으로 돌아왔습니다. 영조 45년(1769년) 방리(坊里) 개편 때 이물도(利勿島), 외포(外浦), 덕포(德浦), 이곡(梨谷), 문암(門岩), 명동(椧洞), 한해, 오비(烏飛), 다공(茶貢), 연사(烟沙), 송정(松亭), 죽토(竹土), 12방(坊)을 두었습니다. 1915년 법정동리령(法定洞里令)에 의하여 한내(汗內), 오비(烏飛), 연사(烟沙), 죽토(竹土), 다공(茶貢), 덕치(德峙), 이목(梨木), 명동(明洞), 천곡(泉谷), 송정(松亭) 등 10..
- 대리 은행나무 대구 달성군(達城郡) 현풍읍(玄風邑)의 남쪽 지역에 대리(大里)가 있습니다. 이곳은 동쪽으로 달성군 현풍읍 신기리, 서쪽으로 구지면 화산리, 남쪽으로 구지면 응암리와 고봉리, 북쪽으로 현풍읍 지리와 접하고 있습니다. 지명은 대니산(戴尼山, 408m) 밑의 으뜸가는 큰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이곳은 대니산의 남동사면 산지에 해당하며, 남쪽도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마을이 대니산 산지의 산기슭에 있습니다. 동쪽에는 차천(車川) 유역의 현내들이 있고, 남동쪽에 용연저수지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산기슭과 현내들 농경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서쪽 일부는 대구 국가산업단지 부지로 편입되어 아파트 단지로 변했습니다. - 대리 은행나무 이곳 대2리 마을 앞 들판 가에 노거수 은..
- 달창저수지 경남 창녕군 성산면과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의 경계 지역에 꽤 큰 저수지가 있습니다. 4월이 되면 벚꽃으로 유명한 이 저수지는 달성군(達城郡)의 '달(達)'과 창녕군(昌寧郡)의 '창(昌)'을 합쳐서 '달창저수지(達昌貯水池)'라고 합니다. - 부용정 달창저수지 옆 도롯가에 평소에도 아름답지만, 늦가을이 되면 더 아름다운 정자가 있습니다. 창녕군 성산면 냉천리에 있는 부용정(芙蓉亭)입니다. - 부용정 부용정은 선조 13년(1580년)에 창녕 현감이었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에 의해 학문을 가르치는 장소로 세워졌습니다. 이후 한강 정구의 문인인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에게 넘겨져 유지되어 오다가 영조 3년(1727년)에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그로부터 53년 후인 정조 4년(1780년)에..
- 후사포리 은행나무(암나무) 짧기만 한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단풍놀이에 나섰습니다. 밀양시 부북면 남서쪽에 후사포리(後沙浦里)가 있습니다. 후사포리는 고려시대에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합니다. 예전에는 지금의 전후사포(前後沙浦)와 송악부락( 松岳部落)까지 통틀어 삽개 또는 삽포(鈒浦)라 하였습니다. 이곳에 노거수 암수 은행나무가 약 60m쯤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 후사포리 은행나무(암나무) 암은행나무는 예림서원으로 가는 도롯가에 있습니다. - 후사포리 은행나무(암나무) 암은행나무입니다. 단풍이 조금 덜 들었습니다. - 후사포리 은행나무(암나무) 수령: 280년.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3.9m. 소재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2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