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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초등학교
포항 장기면의 중심지인 읍내리 바로 동쪽에 마현리(馬峴里)가 있습니다.
마현리는 문장가가 많이 나왔다 하여 '명장(明章)'이라 불리었으며, 상명, 중명, 하명으로 나누었습니다. 조선 태조 5년(1396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장기향교(長鬐鄕校)가 세워졌습니다. 향교가 있는 상명을 명장이라 하고, 중명과 하명을 합하여 교동이라 하였습니다.
마현리 서쪽 읍내리와 경계 지역에 장기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장기초등학교는 1911년에 장기보통학교로 인가받아 개교하였습니다. 개교한 지 10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
장기초등학교 교정에 노거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입니다.
지금 장기향교는 장기읍성(長鬐邑城) 내에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향교가 그곳으로 옮겨가기 전에는 장기초등학교 동편에 있었다고 합니다. 장기초등학교 교정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는 암나무입니다.
은행나무는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듯 잎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나무 주변에는 노란 잎과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는 나무의 크기에 비해 열매양이 많지 않고 크기도 작습니다. 하지만 향이 진하고 맛도 다른 은행나무 열매에 비해 좋아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도 주워 간다고 합니다.

-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귀양 와서 심었다고 합니다.
우암 송시열은 약 4년간 장기(長鬐)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숙종 때인 1675년 6월에 장기로 귀양 와서 마산촌(지금 마현리)에서 지내다가 1679년 4월에 거제로 유배지를 옮겼습니다.
우암 송시열은 이곳에서 오도전(吳道全)이라는 선비 집에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얼마 후 아들과 손자가 그와 합류하여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이처럼 우암 송시열이 유배지에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대 최고 실력자였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우암 송시열에게 성리학을 배운 오도전은 나중에 향교 훈장이 되었습니다. 우암 송시열이 장기를 떠난 후 오도종, 이석증, 황보헌 등 지역의 선비들이 그를 기리는 죽림서원(竹林書院)을 세웠습니다.

-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는 말라죽은 나무와 그 옆에 살아 있는 다른 나무가 있습니다. 말라죽은 나무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채 뼈대만 남아 있습니다.
말라죽은 나무는 우암 송시열이 심은 나무이고, 다른 나무는 원래 은행나무가 말라죽기 전에 뿌리에서 새로 돋아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무박사 이정웅 씨는 원래부터 두 그루를 심은 것 같고, 한 그루는 죽고 한 그루가 살아남은 것 같다고 합니다.

- 장기초등학교 은행나무
수령: 320년.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2.1m.
소재지: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마현리 299.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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