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노거수

부산 충렬사 모과나무

sky_lover_ 2024. 11. 28. 06:27

- 충렬사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을 비롯한 92명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인 충렬사(忠烈詞)가 있습니다.

 

충렬사는 선조 38년(1605년)에 동래부사 윤훤(尹喧)이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弄珠山, 현재 동래경찰서 자리)에 송상현의 위패를 봉안한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입니다.

 

인조 2년(1624년)에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소줄당

 

소줄당(昭崒堂)입니다. 안락서원의 강당으로 쓰였던 건물입니다.

 

'소줄당(昭崒堂)'이라는 당호는 한유(韓愈)의 <백이송(伯夷頌)>에서 유래합니다. <백이송> 중에 '소호일월(昭乎日月) 부족위명(不足為明)/환한 해와 달도 (그에 비해) 밝다고 할 수가 없고, 줄호태산(崒乎泰山) 부족위고(不足爲高)/우뚝 솟은 태산(泰山)도 높다고 할 수 없으며'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소줄당(昭崒堂)'은 이 글귀의 머리글자를 딴 것입니다.

 

'소줄당(昭崒堂)'은 임진왜란 때 선열(先烈)의 충절이 '해와 달보다 밝고, 태산(泰山)보다 높다.'는 것을 뜻합니다.

 

- 안락서원 편액

 

소줄당 대청 후면 벽에 '안락서원(安樂書院)'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효종 3년(1652년)에 동래부사 윤문거(尹文擧)는 충렬사가 좁고 습기가 많으며 성문 가까이에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상현의 학행과 충절이 후학의 사표(師表)가 되므로 이를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충렬사를 안락리(安樂里, 지금의 충렬사 자리)로 옮겼습니다. 이때 강당과 동재, 서재 등을 증축하여 안락서원(安樂書院)이라 하였습니다.

 

- 충렬사

 

충렬사 본당입니다.

 

- 충렬사

 

본당 정면에 '충렬사(忠烈詞)'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 충렬사 모과나무

 

충렬사 본당 옆 뜰에 노거수 모과나무가 있습니다. 충렬사 모과나무입니다.

 

- 충렬사 모과나무

 

충렬사 모과나무 모습입니다.

 

이 모과나무는 수령이 수백 년 되었습니다. 부산 지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모과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 충렬사 모과나무

 

모과나무는 얼핏 보면 멀쩡해 보입니다. 그런데 나무 크기에 비해 열매가 얼마 안 달렸습니다.

 

- 충렬사 모과나무

 

모과나무 밑동을 보면 껍질 부위만 일부 남아 있고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 충렬사 모과나무

 

밑동의 텅 빈 구멍을 통해 올려다보면 하늘이 바라보입니다.

 

- 충렬사 모과나무

 

충렬사 모과나무는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모과나무를 좋아했다는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이 기증한 나무라고 합니다.

 

- 충렬사 모과나무

 

수령: 수백 년.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3.5m.

소재지: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 421-33.

 

(2024.11.24.)

'노거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  (0) 2024.12.03
부산 정과정 유적지, 망미동 팽나무  (0) 2024.11.28
부산 정묘 배롱나무  (2) 2024.11.26
경주 전촌리 팽나무  (0) 2024.11.25
경주 대본리 소나무  (0) 2024.11.22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