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계원1리 바닷가 포항 계원1리(溪院1里)는 '장기미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 마을은 양포(良浦) 바로 남쪽의 바다 끝 한 자락이 둥글게 휘어든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전에 '황계(黃溪)'라고 불렀습니다. 비가 오면 마을 전체가 누런 황토물로 뒤덮였고, 마을에 누런 떡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황계'라고 불리던 이름이 옛날 마을에 관리가 머물러 가던 곳인 평안원(平安院)이 있어 '계원(溪院)'으로 바뀌었습니다. - 성혈바위 계원1리 마을 안쪽의 언덕 비탈에 성혈(性穴)바위가 있습니다. 성혈바위는 거북을 닮았습니다. - 성혈바위 성혈바위 위쪽 면에 성혈이 여러 개 있습니다. 성혈은 지름이 10~15cm, 깊이는 8cm쯤 됩니다. - 계원리 소나무 성혈바위 뒤쪽에 계원리 소나무가 있..

- 삼휴정 영천 성곡리 문화재 이주단지에 사의당(四宜堂) 북쪽 골짜기 안쪽에 삼휴정(三休亭)이 있습니다. 삼휴정은 사각형의 돌담을 두르고 있습니다. 돌담 정면에 사주문(四柱門)이 있고, 이 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一' 자형 정자가 있습니다. - 삼휴정 삼휴정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건물입니다. 중앙에 대청 두 칸을 중심으로 양 측면에 온돌방을 들인 후 전면에 반 칸의 퇴(退)를 두었습니다. 전면 퇴 가장자리에는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두르고, 나머지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하였습니다. - 삼휴정 삼휴정은 인조 13년(1635년)에 정호신(鄭好信)이 세웠다고 합니다. 정호신(鄭好信, 1605~1649)은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정(三休亭)입니다. 정호신은 과거에 응시하여 여러 번..

- 사의당 영천 성곡리 문화재 이주단지에 오회당(五懷堂) 북쪽에 사의당(四宜堂)이 있습니다. 사의당은 정중호(鄭重鎬), 정중기(鄭重岐), 정중범(鄭重範), 정중락(鄭重洛) 네 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건물 구성은 강학 공간인 사의당(四宜堂)과 수의헌(守宜軒) 두 건물과 행랑채, 고방채로 되어 있습니다. - 행랑채 행랑채입니다. - 고방채 사의당은 전체적으로 튼 'ㄷ'자 형태입니다. 행랑채를 들어서면, 고방채와 사의당 측면이 보입니다. 두 건물 사이로 난 통로를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이 있습니다. 안마당 너머에는 수의헌이 있습니다. - 수의헌 수의헌(守宜軒)은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집입니다. 건물의 평면 구성은 왼쪽으로부터 정지 1칸, 온돌..

- 삼휴고택 영천 하천재(夏泉齋) 북쪽에 삼휴고택(三休古宅, 오회공종택(五懷公宗宅))이 있습니다. 삼휴고택은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르고 있고, 정면 좌측에 사주문(四柱門)이 있습니다. 이 문을 들어서면, 마당 오른쪽에 치우쳐 있는 '一' 자형 살림집이 있습니다. 살림집 왼쪽 뒤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사당이 있습니다. 사당은 살림집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 삼휴고택 삼휴고택은 정수번(鄭守藩)이 그의 아들 정호신(鄭好信)을 분가시키면서 광해군 12년(1620년)에 지었습니다. 정수번(鄭守藩, 1580~1621)은 자는 정보(貞甫)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영천, 경주 등지에서 큰 공을 세운 정세아(鄭世雅, 1535~1612)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때 부친과 형들이 의병을 일으켜 ..

- 하천재 영천 강호정(江湖亭) 북쪽에 하천재(夏泉齋)와 신도비각이 있습니다. 하천재는 오천 정씨(烏川鄭氏) 문중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인조 15년(1637년)에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 1535~1612)의 손자인 진주목사(晋州牧使) 정호인(鄭好仁, 1597~1655)이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 건물은 그 뒤에 중건된 것으로 보입니다. 신도비각에는 강의공 신도비가 있습니다. 강의공 정세아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않고 강호정사(江湖精舍)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 높았던 선비였습니다. - 추원당 하천재 뒤편에 추원당(追遠堂)이 있습니다. 추원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집입니다. 건물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