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족대 청도 학일산(鶴日山)의 지맥이 동창천(東倉川)으로 수그러드는 기슭의 절벽 위에 삼족대(三足臺)가 있습니다. 삼족대는 조선 중종 14년(1519년)에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가 고향에 내려와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었습니다. 이 건물은 그의 호를 따서 삼족대(三足臺)라 합니다. - 삼족대 동창천 옆 언덕의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삼족대가 있습니다. 삼족대는 방형의 토석담을 둘렀고, 담장의 북쪽과 남쪽 모퉁이에 사주문(四柱門)을 두었습니다. - 삼족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1479∼1552년)는 정암(靜庵) 조광조 趙光祖)의 문인으로, 중종 2년(1507년) 정시(庭試)에 장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호조정랑 겸 춘추관 기사관, 정언(正言), 칠원현감 등을 지냈습니다..

- 운곡서원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王信里) 왕신저수지 동쪽 골짜기 안쪽에 운곡서원(雲谷書院)이 있습니다. 운곡서원은 정조 8년(1784년)에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 고려태사(高麗太師) 권행(權幸)의 공적을 추모하여 추원사(追遠祠)를 세우고 위패를 모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죽림(竹林) 권산해(權山海, 1403~1456)와 구봉(龜峰) 권덕린(權德麟, 1529~1573)을 추가 배향하였고, 운곡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철폐되었습니다. 1930년 유허지(遺墟址)에 설단(設壇)하여 향사를 지냈으며, 1976년에 서원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은행나무와 유연정 서원 남쪽에 노거수 은행나무와 유연..

- 신계리 느티나무 경주시 외동읍 신계리는 원래 토함산 서쪽 기슭의 구릉지로 섶이 많아 '섶'이라고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섶에', '서배(西培)'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 윗마을은 '상섶', 아랫마을은 '하섶'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상신(上薪)', '하신(下薪)'이라 하였습니다. 상섶에는 '큰마을', '윗마을', '공주말', '뒷말', '중간말' 등이 있습니다. 이곳 지명이 '신계(薪溪)'로 된 것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상섶, 하섶, 진현, 내동면 광산리 각 일부를 병합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상신 윗마을 입구 개울가에 수령이 400년 가까이 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신계리 느티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당산나무입니다. - 삼백정 상신 중간마을 ..

- 분옥정 경북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치동(致洞) 마을 안쪽의 계곡에 멋진 정자가 있습니다. 분옥정(噴玉亭)입니다. 용계정사(龍溪精舍)라고도 합니다. 분옥정은 숙종 때 유학자인 돈옹(遯翁) 김계영(金啓榮, 1660~1729)을 기리기 위해 순조 20년(1820년)에 후손 김종한을 중심으로 한 경주김씨 문중에서 세운 정자입니다. '분옥정(噴玉亭)'이란 정자 이름은 작은 폭포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의 모습이 옥구슬을 뿜어내는 듯하다 하여 붙여졌습니다. 분옥정이 있는 치동 마을은 일암(逸庵) 김언헌(金彦憲, 1609~1682)이 병자호란이 일어난 인조 14년(1636년)에 이곳에 터전을 잡으면서 생긴 경주김씨의 집성촌입니다. 당시 일암 김언헌은 직접 주위 나무를 벌채하여 마을의 터전을 닦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 달창저수지 경남 창녕군 성산면과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의 경계 지역에 꽤 큰 저수지가 있습니다. 4월이 되면 벚꽃으로 유명한 이 저수지는 달성군(達城郡)의 '달(達)'과 창녕군(昌寧郡)의 '창(昌)'을 합쳐서 '달창저수지(達昌貯水池)'라고 합니다. - 부용정 달창저수지 옆 도롯가에 평소에도 아름답지만, 늦가을이 되면 더 아름다운 정자가 있습니다. 창녕군 성산면 냉천리에 있는 부용정(芙蓉亭)입니다. - 부용정 부용정은 선조 13년(1580년)에 창녕 현감이었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에 의해 학문을 가르치는 장소로 세워졌습니다. 이후 한강 정구의 문인인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에게 넘겨져 유지되어 오다가 영조 3년(1727년)에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그로부터 53년 후인 정조 4년(1780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