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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청도 삼족대

sky_lover_ 2024. 2. 29. 06:51

- 삼족대

 

청도 학일산(鶴日山)의 지맥이 동창천(東倉川)으로 수그러드는 기슭의 절벽 위에 삼족대(三足臺)가 있습니다.

 

삼족대는 조선 중종 14년(1519년)에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가 고향에 내려와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었습니다. 이 건물은 그의 호를 따서 삼족대(三足臺)라 합니다.

 

- 삼족대

 

동창천 옆 언덕의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삼족대가 있습니다.

 

삼족대는 방형의 토석담을 둘렀고, 담장의 북쪽과 남쪽 모퉁이에 사주문(四柱門)을 두었습니다.

 

- 삼족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1479∼1552년)는 정암(靜庵) 조광조 趙光祖)의 문인으로, 중종 2년(1507년) 정시(庭試)에 장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호조정랑 겸 춘추관 기사관, 정언(正言), 칠원현감 등을 지냈습니다.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조식(曺植), 박하담(朴河淡), 주세붕(周世鵬), 김응조(金應祖), 김극일(金克一), 신계승(申季誠) 등과 같은 선비와 교우하면서 이곳에서 강론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종 15년(1520년)에 벗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과 더불어 사창(社倉)인 동창(東倉)을 창설하여 휼민(恤民) 사업을 이끌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 삼족대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입니다.

 

정면 3칸 중 좌측 협칸은 전면이 개방된 2간통(間通) 마루이고, 우측 2칸은 전면에 반 칸 퇴를 물려 마루를 깔고 그 뒤쪽에 온돌방을 들였습니다.

 

이 건물은 중종 14년(1519년)에 건립되었다고 하지만,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는 동안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으로 변모하였습니다.

 

- 현판

 

건물벽에 '삼족대(三足臺)'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현판 크기는 가로 65.2cm, 세로 32cm입니다.

 

삼족당 김대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벼슬은 현감을 지냈으니 벼슬로도 만족하고, 항상 밥상에 반찬이 부족하지 않으니 먹는 것도 만족하고, 나이도 환갑을 넘겼으니 수명(壽命)도 만족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호를 삼족당(三足堂)이라 하였습니다.

 

- 삼족대

 

건물 뒤쪽입니다. 건물 앞쪽 공간이 좁아지는 것을 감수하고 건물 뒤쪽 바위를 없애지 않고 남겨 두었습니다.

 

- 삼족대

 

삼족대는 동창천 암벽 위에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름다운 한국 정자의 조건을 두루 갖춘 정자입니다.

 

- 동창천

 

동창천의 푸른 물을 바라보며 <삼족당집(三足堂集)>에 실려 있는 '우흥(寓興)'이란 시를 소개합니다.

 

우흥(寓興, 흥을 붙이다)  - 김대유(金大有)


어눌한 못(訥淵)이 어리석은 못(愚淵)에 다다른다
옛 성인도 어리석은 듯 어눌하려 했다 하네
낚시하며 이곳을 내왕하길 십 년
이젠 인간사에 어리석고 언사도 어눌해졌네

 

(202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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