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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경주 양동마을 무첨당

sky_lover_ 2024. 2. 22. 07:12

- 여강이씨 종가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고택 가운데 눈여겨보아야 할 고택으로 관가정, 향단, 무첨당, 서백당이 있습니다. 이 고택들은 양동마을을 구성하는 경주손씨(慶州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 가문의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무첨당(無添堂)은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있는 여강이씨 종가 별당입니다. '무첨당'이란 당호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맏손자인 무첨당(無添堂) 이의윤(李宜潤, 1564~1597)의 호에서 따왔습니다. '무첨당'은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강이씨 종가의 구성은 크게 살림채인 본채, 별당인 무첨당, 사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채는 중종 3년(1508년)에 건립되었으며,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었던 중종 35년(1540년)경에 건립되었습니다.

- 무첨당

 

무첨당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왼쪽 방 앞으로 누마루를 돌출시켜 'ᄀ' 자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무첨당은 제사를 지내는 제청(祭廳)의 기능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독서와 휴식, 손님 접대, 문중 회의를 하는 큰 사랑채로 쓰였습니다.

 

- 무첨당

 

무첨당에는 많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누마루에만 해도 '청옥루(靑玉樓)', '세일헌(世一軒)', '오체서실(五棣書室)'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청옥루(靑玉樓)' '푸른 옥'이란 뜻으로, 문루의 산뜻한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 누마루 현판

 

'세일헌(世一軒)'은 '세상에서 유일하다'는 뜻으로, 문루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오체서실(五棣書室)'은 '다섯 형제가 공부하면서 우의를 다진다'는 뜻으로, '오체(五棣)'는 회재 이언적의 다섯 손자를 가리킵니다.

 

- 무첨당

 

대청마루에도 여러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대청마루 정면과 왼쪽 벽에 '무첨당(無添堂)', '물애서옥(勿厓書屋)'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물애(勿厓)'는 무첨당이 있는 물봉골을 뜻하고, '서옥(書屋)'은 학문을 하는 마을을 뜻하므로, '물애서옥(勿厓書屋)'은 조선 제일의 반촌을 상징한 것입니다.

 

- 좌해금서 현판 (2012.6.6.)

대청마루 오른쪽 벽에 '좌해금서(左海琴書)'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습니다.

'좌해(左海)'는 서울의 왼편인 영남지방을 뜻하고, '금서(琴書)'는 선비들이 가까이 두고 즐겨야 할 거문고와 서책을 뜻합니다. 따라서 '좌해금서(左海琴書)'는 '영남에서 선비들이 머무는 마을'을 뜻합니다.

 

- 무첨당

 

오른쪽 방 정면에도 '창산세거(蒼山世居)'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글씨는 '설창산 아래 대대로 거주하는 집'을 뜻합니다. 설창산은 무첨당의 뒷산입니다.

 

특이하게 오른쪽 방의 바깥쪽으로 툇마루방을 덧붙여 달고 부섭지붕을 올렸습니다. 툇마루방은 제기 등의 보관 장소로 쓰입니다.

 

- 사당과 본채

 

사당은 무첨당과 본채 사이의 높은 언덕에 있습니다.

 

본채는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되어 있습니다. 본채 앞으로 부속채가 '一' 자로 자리 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튼 'ㅁ' 자형 배치를 하였습니다.

 

본채와 부속채 사이에 중문이 있습니다. 이 문을 통해 안채가 있는 안마당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평소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습니다.

 

(202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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