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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가정

 

​경주 양동마을 고택은 관념적인 당호(堂號)가 많은 다른 지역 고택과는 달리 당호가 전원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큰 향나무가 있으면 향단(香檀), 소나무가 있으면 송첨(松簷) 등으로 말입니다. 관가정(觀稼亭)도 예외가 아닙니다. 관가정은 '농사짓는 풍경을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관가정은 양동마을 초입의 전망 좋은 서향받이 언덕 위에 있습니다. 양동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물(勿)' 자 형국의 명당 터인데, 그 첫 번째 획이 뻗어 내려오는 지점에 관가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건물 배치도

 

관가정 건물 배치도입니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ㅁ'자 형 좌·우측에 날개를 단 형태로 되어 있고, 그 뒤편 동북쪽에 별도로 일곽을 이룬 사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관가정에서 특이한 것은 총면적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 대청마루입니다.

 

이 정도 명문가의 대종가는 일 년에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제사를 치러야 했고, 제사 의례는 종갓집의 가장 큰 일상사였습니다. 따라서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제사에 필요한 공간 확보와 배열이었습니다. 집에 비해 지나치게 큰 안채 대청마루도 수십 명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관가정

 

관가정은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의 고택이자 손씨 문중 종택으로, 중종 9년(1514년)에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건축되었다면 손중돈이 예조참판을 역임하던 시절쯤 됩니다.

 

손중돈은 양동마을 입향조인 송재(松齋) 손소(孫昭)의 차남이지만 맏형이 장가들어 마을을 떠나는 바람에 손씨 가문의 장손이 되어 분가 직후 관가정이 대종가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4세기가 훨씬 지난 후인 20세기 초에 서백당으로 대종가를 옮겨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관가정은 손씨 일가의 별장으로 쓰였다가 지금은 빈집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 사당

 

관가정 사당입니다.

 

- 손소 초상화

 

사당 안에는 손소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 안채

 

안채는 안채 마당 폭을 가득 메운 대청마루와 그 좌우에 각기 건넌방과 안방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건넌방과 안방 앞쪽으로도 여러 공간이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 부엌이 안방과 다소 떨어져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조금 이채롭습니다.

 

- 안채

 

안채 마당 한쪽에 놓인 소나무 분재가 고택의 멋을 더합니다.

 

- 안채 마당에서 바라본 중문

 

안채 마당은 'ㅁ' 자형의 폐쇄적인 가옥 구조에서 흔히 보듯 좁고 답답해 보입니다. 이것은 폐쇄적인 가옥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안채 마당에 들어서면 사방이 막혀 있어 중문이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처럼 느껴집니다. 좁고 답답한 안채 마당을 보면서 이 공간 속에서 한평생을 살아가야 했을 당시 여인네의 비애가 느껴집니다.

 

- 사랑채

 

사랑채는 중문 왼쪽에 있습니다. 누마루로 꾸민 2칸 대청마루와 2칸 온돌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청마루 정면은 남향으로 항시 바깥 경치를 조망할 수 있게 개방하였고, 서향인 좌측면에 4분합 들문을 달아 여름에는 서향 볕을 막고 때로는 집 밖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청마루 우측 모서리에 안채로 드나들 수 있는 은밀한 작은 문을 내었습니다.

 

- 사랑채

 

관가정 사랑채에 오르면 이름에 걸맞은 경관이 펼쳐집니다.

 

안채에서는 중문을 통해 앞산만이 보이지만, 사랑채에서는 앞산뿐만 아니라 그 아래로 펼쳐진 너른 들판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산뿐 아니라 농사짓는 들판의 모습까지도 경관의 한 요소로 삼았습니다.

 

- 향나무

 

관가정 왼쪽 축대 위에 언젠가 넘어져 꾸부러진 채로 자라는 오래된 향나무가 있습니다.

 

- 향나무

 

관가정 향나무입니다.

 

- 향나무

 

관가정 향나무는 서백당의 향나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만만찮은 연륜이 느껴집니다. 수령이 수백 년은 족히 된 듯싶습니다.

 

- 향나무

 

관가정 향나무는 어쩌면 손중돈이 분가해 나올 때 아버지 손소가 심은 서백당의 향나무 씨를 받아 심었거나 아니면 가지를 삽목해 심은 나무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2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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