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귀정 (사진 출처: 성주군청) 경북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에 포천(布川)계곡이 있습니다. 포천계곡은 짙푸른 물과 바위가 마치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다 하여 그렇게 부릅니다. 이곳에 만귀정(晩歸亭)이 있습니다. 만귀정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노년에 지은 정자입니다. 이원조(李源祚, 1792~1872)는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입니다. 그는 성주 한개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순조 9년(180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헌종 3년(1837년)에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흉년으로 인한 민생의 어려움과 사족(士族)들의 사치함을 들어 쇄신책을 실시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철종 원년(1850년)에 경주부윤(慶州府尹)에 올랐으나, 경상좌도 암행어사 김세호(金世鎬)의 탄..
- 정지재(定止齋), 작자 미상, 조선 후기, 51.4 x 114.2 x 11.0cm,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살집 두툼한 글씨를 해서체로 쓴 안동(安東) 정지재(定止齋) 현판입니다. 정지재 주인 김확(金確, 1583~1665)은 조선 중기 학자로,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이실(而實)이며, 호는 정지재(定止齋)입니다. 구봉(九峰) 김전(金㙉, 1538~1575)의 손자입니다. 그는 일찍 생원시에 합격하여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천거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안(禮安)에 살았는데, 인조 14년(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매원(梅園) 김광계(金光繼, 1580~1646)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미 조정이 청나라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향으로 돌아..
- 옥천종택 (사진 출처: 영양군청)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한양조씨(漢陽趙氏)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이 17세기 말에 지은 고택이 있습니다. 옥천종택(玉川宗宅)입니다. 옥천종택은 살림채인 정침(正寢), 글 읽는 별당인 초당(草堂), 가묘인 사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침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연결된 'ㅁ'자형을 하고 있습니다. 별채는 초당(草堂)이라고 하며, 초가지붕을 하였습니다. 사당은 정침 뒤쪽에 있습니다. 이 고택은 조덕린의 아들 조희당(趙喜堂)을 비롯하여 조희당의 아들 조운도(趙運道), 조술도(趙述道), 조진도(趙進道), 그리고 조진도의 아들 조거신(趙居信) 등 조선의 쟁쟁한 학자들이 태어난 곳입니다. - 옥천종택의 살림채 (사진 출처: 영양군청) 조덕린(趙德鄰, ..
- 오헌(吾軒), 박규수(朴珪壽, 1807~1877), 조선 1875년, 56 x 131x 7cm,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해서체로 '오헌(吾軒)'이라 쓴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오헌(吾軒) 박제연(朴薺淵)의 고택(古宅) 당호(堂號) 현판입니다. 오헌(吾軒)은 '나의 집'을 뜻합니다. 현판 글씨는 고종 12년(1875년)에 당대 최고의 개화사상가인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7)가 썼습니다. 환재 박규수는 큰 글씨로 '오헌(吾軒)'이라 쓴 후 남은 여백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뭇 새들도 깃들일 곳이 있어 즐겁듯이 / 衆鳥欣有托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 / 吾亦愛吾廬 이는 도연명이 마음으로 / 此爲陶令襟期 사물과 내가 즐거..
- 파평윤씨 시조 묘역에서 바라본 봉강재 파평윤씨(坡平尹氏)는 고려 전기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은 윤관(尹瓘)을 비롯하여 근대에 윤봉길 의사와 윤동주 시인 등 여러 인물을 배출한 명문 가문입니다. 고려 후기 충선왕 때 종친과 혼인할 수 있는 열다섯 가문으로 구성된 재상지종(宰相之宗)을 정하였습니다. 이것은 고려 후기의 지배 세력인 권문세가(權門勢家)를 뜻합니다. 여기에 파평윤씨 가문이 들어가 있습니다. 조선 때 청주한씨(淸州韓氏) 다음으로 여흥민씨(驪興閔氏)와 함께 왕비를 많이 배출한 가문입니다.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조의 왕비), 정현왕후(貞顯王后: 성종의 왕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중종의 왕비)가 파평윤씨 출신입니다.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운주산(雲住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