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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귀정 (사진 출처: 성주군청)

 

경북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에 포천(布川)계곡이 있습니다. 포천계곡은 짙푸른 물과 바위가 마치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다 하여 그렇게 부릅니다. 이곳에 만귀정(晩歸亭)이 있습니다. 만귀정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노년에 지은 정자입니다.

 

이원조(李源祚, 1792~1872)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입니다. 그는 성주 한개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순조 9년(180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헌종 3년(1837년)에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흉년으로 인한 민생의 어려움과 사족(士族)들의 사치함을 들어 쇄신책을 실시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철종 원년(1850년)에 경주부윤(慶州府尹)에 올랐으나, 경상좌도 암행어사 김세호(金世鎬)의 탄핵으로 삭탈관직 되었습니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철종 5년(1854년)에 대사간에 이어 공조판서를 지냈습니다.

 

이원조는 만귀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만귀정(晩歸亭)  - 이원조(李源祚)

 

늦게 돌아옴을 한탄치 아니하네
올해가 육순이 되는 해라네


참으로 세상의 생각을 잊음이 아니오
애오라지 한가한 몸을 기를 수 있네


벽지에 처하니 심신이 평온하고
황무지를 개척하니 안목이 새롭네


산림에 사는 것이 본분이니
조물주는 나에게 성내기 마시길

 

- 만귀산방(晩歸山房), 작자 미상, 19세기 중반, 26.2 x 70.3 x 2.2cm,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행서체로 쓴 만귀산방(晩歸山房)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만귀정 사주문(四柱門)에 걸려 있던 현판입니다.

 

'만귀(晩歸)'는 진작부터 관료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학문에 몰두하고 싶었으나, 노년에 이르러서야 실천에 옮길 수 있어 안타깝다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방(山房)'은 만귀정을 찾는 사람에게 만귀정이 산중의 고요한 수양처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만귀(晩歸)'정자를 세우는 데 있어 터를 잡는 데 10년이 걸리고 집을 짓는 데 3년이 걸려 모두 13년이 걸렸다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가 쓴 <만귀정기(晩歸亭記)>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1843년에 제주(濟州)에서 돌아와 목재와 기와를 사놓았고 1846년에 자주 있으면서 예서를 잘 쓰는 소눌(小訥) 조석신(趙錫臣)에게 편액을 부탁하였으며 1850년에 경주부윤을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에는 청천(淸川)의 수렴(水簾)에 터를 잡았다가 중간에 조암(祖巖)의 강 언덕으로 옮겼다가 결국 포천(布川) 위 홍개동(洪開洞)에 터를 잡아 짓게 되었는데, 터를 잡는 데만 10년이 걸렸고 정자를 짓는 데 또 3년이 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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