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오헌(吾軒), 박규수(朴珪壽, 1807~1877), 조선 1875년, 56 x 131x 7cm,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해서체로 '오헌(吾軒)'이라 쓴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오헌(吾軒) 박제연(朴薺淵)의 고택(古宅) 당호(堂號) 현판입니다. 오헌(吾軒)은 '나의 집'을 뜻합니다. 

 

현판 글씨는 고종 12년(1875년)에 당대 최고의 개화사상가인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7)가 썼습니다. 환재 박규수는 큰 글씨로 '오헌(吾軒)'이라 쓴 후 남은 여백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뭇 새들도 깃들일 곳이 있어 즐겁듯이  / 衆鳥欣有托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  / 吾亦愛吾廬
이는 도연명이 마음으로  / 此爲陶令襟期
사물과 내가 즐거움을 함께 누리기를 기대한 것이니  / 物吾同樂
혼연히 천진스러운 말이다.  / 渾然天眞語也
무릇 자신을 아는 자가 드물지만  / 夫知吾者鮮矣
자신을 온전히 하는 자는 더욱 드물다.  / 而全吾者爲尤鮮
내가 사랑하는 바가 있는 뒤에야  / 吾有所愛然後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를 수 있는 것이다.  / 乃能從吾所好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 可語此者
우리 반남박씨 종친 중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  / 吾宗有其人也


을해(乙亥, 1875) 8월 백송당(白松堂)에서 박규수가 쓰다.  / 瓛卿書于白松堂乙亥仲秋

 

'오헌(吾軒)'이라는 당호는 일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름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헌(吾軒)' 글씨에 대해 쓴 설명을 보게 되면 이 당호에 담긴 뜻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 부분 (사진 출처: 서울신문)

 

오헌(吾軒) 박제연(朴薺淵, 1807~1890)은 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에게 수학하여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참의(兵曹參議)를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임명되었고,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겸임하였습니다.

 

사람은 가난하면 아첨하기 쉽고 부귀하면 교만하기 쉬운 법입니다. 그러나 오헌 박제연은 50년 공직 생활을 하면서 높을 때는 겸손하였고 낮을 때는 비굴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 오헌고택 현판 (사진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오헌(吾軒)'은 도연명(陶淵明)의 시 <독산해경(讀山海經)> 제1수(首)에 나오는 시구인 '오역애오려(吾愛吾廬)'에서 따왔습니다. <독산해경>은 13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제1수를 소개합니다.

 

산해경을 읽으며  / 도연명
讀山海經  / 陶淵明

 

제1수

基一

초여름이라 초목이 자라서, 집을 둘러싸고 나무가 우거졌다.

孟夏草木長 繞屋樹扶疏.

뭇 새들도 깃들일 곳이 있어 즐겁듯이,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

鳥欣有托 吾亦愛吾廬.

밭을 갈고 씨도 뿌려놓은 뒤라서, 틈을 내서 돌아와 책을 읽는다.

既耕亦已種 時還讀我書.

궁벽한 골목이라 큰 수레 길과 떨어져 있어, 번번이 친구의 수레를 돌아가게 만든다.

窮巷隔深轍 頗回故人車.

 

즐겁게 봄 술을 따라 마시고, 텃밭에서 채소를 딴다.
歡然酌春酒 摘我園中蔬.

가랑비가 동쪽에서 묻어오니, 기분 좋은 바람이 함께 불어온다.

微雨從東來 好風與之俱.

주나라 목천자전(穆天子傳)을 대충 훑어보고, 산해경의 그림도 두루 살펴본다.

泛覽周王傳 流觀山海圖.

아래위로 우주를 다 돌아보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俯仰終宇宙 不樂復何如.

 

'문화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 정지재 현판  (0) 2024.02.01
영양 옥천종택 별당 현판  (2) 2024.01.31
포항 봉계리 봉강재  (0) 2024.01.29
포항 봉계리 분옥정, 향나무와 소나무  (1) 2024.01.26
대구 냉천리 지석묘군  (0) 2024.01.18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