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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포항 봉계리 봉강재

sky_lover_ 2024. 1. 29. 06:08

- 파평윤씨 시조 묘역에서 바라본 봉강재

 

파평윤씨(坡平尹氏)는 고려 전기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은 윤관(尹瓘)을 비롯하여 근대에 윤봉길 의사와 윤동주 시인 등 여러 인물을 배출한 명문 가문입니다.

 

고려 후기 충선왕 때 종친과 혼인할 수 있는 열다섯 가문으로 구성된 재상지종(宰相之宗)을 정하였습니다. 이것은 고려 후기의 지배 세력인 권문세가(權門勢家)를 뜻합니다. 여기에 파평윤씨 가문이 들어가 있습니다. 

 

조선 때 청주한씨(淸州韓氏) 다음으로 여흥민씨(驪興閔氏)와 함께 왕비를 많이 배출한 가문입니다.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조의 왕비), 정현왕후(貞顯王后: 성종의 왕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중종의 왕비)가 파평윤씨 출신입니다.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운주산(雲住山) 구봉(九峯) 아래에 봉강재(鳳岡齋)가 있습니다. 봉강재는 파평윤씨 시조묘(始祖墓), 별묘(別廟), 재사(齋舍)를 포함한 영역을 말합니다. 봉강재 서쪽 높은 언덕에 파평윤씨 시조(始祖) 태사공(太史公) 윤신달(尹辛達)의 묘소(墓所)가 있습니다.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尹辛達, 893~973)은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918년 신숭겸 등과 함께 왕건을 도와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 창건에 공을 세웠고, 후백제의 견훤을 복속시킬 때와 신라 경순왕을 귀순시킬 때 공이 컸습니다. 나아가 견훤의 아들 신검을 토멸하여 후삼국통일에 공을 세웠습니다. 

 

후삼국통일 후 건국 공로로 벽상삼한익찬공신(壁上三韓翊贊功臣)의 서훈과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의 관직을 받았습니다. 고려 2대 왕인 혜종 때 동경(東京: 지금의 경주) 대도독(大都督)에 부임하여 30년간 재임하다 임지에서 사망하였습니다.

 

- 파평윤씨 시조 묘역

 

윤신달의 묘소는 중간에 일시 실전(失傳)되어 이곳 토호(土豪) 이하지(李厦榰)가 석물을 없애고 투장(偸葬: 남의 산이나 묏자리에 몰래 자기 집안의 묘를 쓰는 일)하였습니다. 이것을 후손들이 다시 찾아내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24세손 윤이(理, 1636~1694)가 오래된 문헌과 이곳 노인들의 구전으로 묘소의 위치를 알게 되어 1680년대 경 경주부윤(慶州府尹) 재임 때 묘소를 찾았으나 단서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25세손 윤봉정(尹鳳廷)이 영조 13년(1737년)에 경주 영장(營將)으로 부임하여 묘소 부근을 파헤쳐 '대부윤(大夫尹)'이라고 새긴 비 조각을 발견하였으나 그것만으로 입증하기는 미흡하였습니다.

- 파평윤씨 시조 묘역

 

윤이(理)의 아들 윤양래(陽來)가 영조 15년(1739년)에 경상감사로 부임한 후 7일간에 걸쳐 이 주위를 파헤쳐 '선지(先之: 2세 공신공(功臣公))'와 '금강(金剛: 3세 복야공(僕射公))'이라고 새긴 비 조각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이곳이 윤신달의 묘소가 틀림없음을 확인하고 이가(李家)가 투장하였던 분묘 6기를 전부 파서 이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영조 16년(1740년)에 윤신달의 묘소를 다시 봉축하였습니다.

 

- 파평윤씨 시조 묘역에서 바라본 봉강재

 

그 후 27대손 윤광소(尹光紹)가 영조 27년(1751년)에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재사(齋舍)를 세웠습니다.

 

순조 33년(1833년)에 재사(齋舍) 뒤에 봉강서원(鳳岡書院)을 세웠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은 철폐되었습니다. 그때 재사(齋舍) 뒤에 별묘(別廟)를 새로 짓고 윤신달의 위패를 이안(移安)하였습니다.

 

재사(齋舍)는 여러 차례 중수하였습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1935년에 많이 퇴락하여 크게 개·증축을 하였습니다.

 

- 묘비

 

묘비입니다.

 

묘비에는 '고려태사윤공신달지묘(高麗太師尹公莘達之墓)'라고 적혀 있습니다.

 

- 문인석

 

문인석입니다.

 

- 문인석

 

또 다른 문인석입니다.

 

- 봉강묘

 

봉강재 북쪽 높은 곳에 봉강묘(鳳岡廟)가 있습니다.

 

- 봉강묘

 

봉강묘는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별묘(別廟)입니다.

 

1982년에 10여 평에 지나지 않은 협소한 묘당(廟堂)을 헐고 규모를 확장하여 다시 지었습니다.

 

- 봉강재

 

봉강묘 아래에 재사(齋舍)인 봉강재(鳳岡齋)가 있습니다.

 

- 봉강재

 

봉강재는 잘 다듬은 화강석 기단 위에 정면 6칸 측면 4칸의 'ㄱ'자형 팔작지붕 집입니다.

건물은 5칸의 온돌방 전면에 툇마루를 놓고, 우측에 온돌 2문으로 연립하고, 그 전면에 'ㄱ'자 형으로 누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물에 '봉서암(鳳捿菴)', '봉강재(鳳岡齋)', '태사공분암(太師公墳菴)'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소나무와 향나무

 

봉강재 앞뜰에 소나무와 향나무가 있습니다. 싱그러운 향기가 뜰에 가득 퍼지는 것 같습니다.

 

- 재실

 

봉강재 서쪽에 유사실(有司室)인 추모헌(追慕軒)이 있습니다. 건물 정면에 '재실(齋室)'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봉강서원

 

봉강재 동쪽에 다시 지은 봉강서원이 있습니다.

 

양쪽에 1칸 방이 있는 정면 5칸의 팔작지붕 집입니다. 정면에 '봉강서원(鳳岡書院)'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당호는 양사당(養士堂)입니다.

 

봉강재(鳳岡齋)는 규모가 왕릉에 버금갈 만큼 대단합니다. 파평윤씨의 위세가 여전함을 느끼게 합니다.

 

(202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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