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덕봉헌 현판

 

대구박물관의 조선현판전에 전시된 덕봉헌(德峯軒)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경주시 마동에 있는 덕봉정(德峯亭)에 걸려 있던 현판입니다. 현판 글씨는 조선 말기의 저명한 서예가인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썼습니다. 

 

덕봉정은 덕봉(德峰) 이진택(李鎭宅, 1739~1805)이 말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던 작은 초당이었습니다. 그 뒤 1905년에 이진택의 증손자인 야은(野隱) 이우영(李祐榮, 1822~1913)이 지금의 덕봉정을 세워 선조(先祖)를 추모하였습니다.

 

 

- 덕봉정(2023.1.24.)

 

덕봉정을 덕봉정사(德峰精舍)라고도 합니다.

 

건물은 토함산 기슭인 주변 환경을 감안하여 'ㄱ'자형으로 지었습니다. 중앙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들이고, 연못 쪽으로 누마루를 내었습니다. 누마루와 대청마루는 툇마루로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 덕봉정(2023.1.24.)

 

덕봉(德峰) 이진택(李鎭宅)은 낭만적인 문인이자 소신 있는 행정가이며 세상을 바꾸려는 개혁가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과거에 낙방하자 금강산을 다녀와 <금강산유록(金剛山遊錄)>을 남겨 이름을 얻었고, 노년에 함경도 삼수(三水)로 유배를 가는 와중에도 관동팔경을 돌아보며 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시노혁파(寺奴革罷)를 골자로 하는 사대직겸진시노혁파소(辭臺職兼陳寺奴革罷疏)를 올려 관철함으로써 조선 땅에서 관청의 공노비를 없앴습니다.

그는 정조 재위 시절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예조 정랑(禮曹正郞),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지냈습니다. 정조의 신임을 얻어 백련을 선물 받았고, 왕궁이 있는 세심대에서 왕과 함께 시를 주고받을 정도로 시문이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죽은 뒤 65세의 나이에 최악의 유배지인 함경도 삼수로 귀양을 가는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 모각한 덕봉헌 현판(2023.1.24.)

 

지금 덕봉정에 걸려 있는 모각한 덕봉헌 현판입니다. 원래 덕봉헌 현판에 미치지 못합니다.

 

- 죽서루(2020.8.16.)

 

이진택은 함경도 삼수로 유배를 가면서 관동팔경의 마지막인 총석정을 끝으로 꿈에도 그리던 관동팔경을 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임금님의 은혜라며 자신에게 유배형을 내린 순조에 대해 충정 어린 심정을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팔경이 바다와 접해 있어 어느 것 하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죽서루는 하얀 모래 위에 맑은 냇물이 못을 이루었고, 기암괴석은 좌우로 십 리 골짜기를 이루었는데, 넓은 바다와 어우러져 한 번만 보아도 심신이 상쾌해진다. 이곳이 강산의 제일이며 관동의 절경이다. 갑오년 가을, 금강산을 유람하고 경성으로 돌아갈 때 이곳을 보지 못했기에 평생을 두고 소원했는데, 이번 귀양길에 곳곳을 다 보게 되니 이 또한 임금님의 은혜라 아니 할 수 없다.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