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양 마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德陽里)는 햇볕 받는 곳이라 하여 양촌(陽村)이라 하기도 하고, 햇볕을 더 많이 받도록 가양(加陽)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곳 마을은 가양, 덕암(근촌), 송월, 싱매(승마)가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마을은 가양입니다. 가양(加陽)은 덕양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으며, 옛 지명은 '가을양(加乙陽)'입니다. 이곳은 1709년 이전에는 밀양 땅이었습니다. 에는 "제내리(堤內里)였고, 동쪽에 극락제(極樂堤)가 있으며,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옛 탑이 남아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덕양리 삼층석탑 가양 마을 입구에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이 당산나무 옆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덕양리(덕양동) 삼층석탑입니다. 덕양리 삼층석탑은 에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남아 있었다는 탑입니다..
- 삼족대 청도 학일산(鶴日山)의 지맥이 동창천(東倉川)으로 수그러드는 기슭의 절벽 위에 삼족대(三足臺)가 있습니다. 삼족대는 조선 중종 14년(1519년)에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가 고향에 내려와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었습니다. 이 건물은 그의 호를 따서 삼족대(三足臺)라 합니다. - 삼족대 동창천 옆 언덕의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삼족대가 있습니다. 삼족대는 방형의 토석담을 둘렀고, 담장의 북쪽과 남쪽 모퉁이에 사주문(四柱門)을 두었습니다. - 삼족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1479∼1552년)는 정암(靜庵) 조광조 趙光祖)의 문인으로, 중종 2년(1507년) 정시(庭試)에 장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호조정랑 겸 춘추관 기사관, 정언(正言), 칠원현감 등을 지냈습니다..
- 장연사지 밀양과 청도가 경계를 이루는 구만산(九萬山) 서쪽 자락에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長淵里)가 있습니다. 이곳 지명은 신라 때 절인 장연사(長淵寺)가 있어서 붙여졌습니다. 또한, 동창천(운문천) 가운데에 장연(長淵)이라는 넓고 깊은 소(沼)가 있어서 장연(長淵)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한때 구만산 골짜기마다 암자가 있어서 절골이라고도 합니다. 장연리에는 길명(吉明)과 장수(長水) 마을 등이 있습니다. 경작지 대부분은 대추나무밭으로 바뀌었고, 물 빠짐이 좋은 경사진 밭은 감나무밭이 되었습니다. 장수 마을 입구에 절터가 있습니다. 장연사지(長淵寺址)입니다. - 느티나무 절터에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밑동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가 언제까지 버텨..
- 근암고택 앞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경주 양동(良洞)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물(勿)' 자 형국의 명당 터에 있습니다. '물(勿)' 자 형국의 양동마을 안쪽 언덕 위에 근암고택(謹庵古宅)이 있습니다. 이곳은 양동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 근암고택 사랑채 근암고택은 태로(台老) 이정수(李鼎壽, 1758~1784)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인 이 씨가 언덕 아래 평지에 지었던 집입니다. 1880년대에 그의 현손(玄孫)인 근암(謹庵) 이희구(李熙久, 1858~1901)가 옛집을 뜯어서 지금 자리에 옮겨 지으면서 규모를 늘려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집의 이름이 근암고택이 되었습니다. 근암고택은 '一' 자형 문간채가 있고, 그 안쪽에 'ㄱ' 자형 안채와 '一' 자형 사랑채가 있습니다...
- 여강이씨 종가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고택 가운데 눈여겨보아야 할 고택으로 관가정, 향단, 무첨당, 서백당이 있습니다. 이 고택들은 양동마을을 구성하는 경주손씨(慶州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 가문의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무첨당(無添堂)은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있는 여강이씨 종가 별당입니다. '무첨당'이란 당호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맏손자인 무첨당(無添堂) 이의윤(李宜潤, 1564~1597)의 호에서 따왔습니다. '무첨당'은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강이씨 종가의 구성은 크게 살림채인 본채, 별당인 무첨당, 사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채는 중종 3년(1508년)에 건립되었으며,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었던 중종 35년(1540년)경에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