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박물관 특별전 현수막 1937년 3월 9일 충남 부여 규암면 외리에 사는 농부가 보리밭에서 나무뿌리를 캐다가 무늬가 새겨진 사각형의 전돌과 와당을 다수 발견하였습니다. 농부의 신고를 받은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사무촉탁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현장에 파견되었습니다. 아리미쓰는 4월 18일에서 5월3일까지 보름간 150평을 긴급 발굴하였습니다. 하지만 발굴 기간이 짧았던데다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는 등 악천후가 겹쳤고, 유적의 파손이 심한 상태여서 제대로 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무늬 전돌은 완형만 42점(조각까지 포함하면 150여 점)이나 확인되었습니다. 전돌 세트는 나지막한 대지와 보리밭 사이의 얕은 땅 밑에서 남북 방향으로 9m 정도 열 지어져 있었습니다. 발견된 무늬 전돌..
- 용암사지 앞 벼랑 위의 연리근 느티나무 용암사지(龍巖寺址)는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 있습니다.절터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진주-마산 간 2번 국도를 따라가다 이반성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이반성면의 용암 마을 쪽으로 갑니다. 용암 마을 못 미쳐서 용암사지승탑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좁은 도로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면 소쿠리처럼 움푹 들어간 곳에 절터가 있습니다. 절터 앞 벼랑 위에 연리근(連理根)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연리근은 두 나무의 뿌리가 서로 이어진 것을 말합니다.- 농포집장판각 절터에는 해주정씨(海州鄭氏)의 재실이 있습니다. 솟을삼문 비연문(斐然門)을 지나면 농포집장판각(農圃集藏版閣)이 있습니다. 농포집(農圃集)은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 1565~1624)의 시문집을 말합니..
- 서쪽 성벽 앞의 안내판 거제 지세포 동쪽 끝의 선창 마을 뒷산에 지세포진성(知世浦鎭城)이 있습니다. 지세포진성은 선창 마을 뒤쪽 산비탈에 'ㅁ자 모양으로 바다로 향해 성벽을 쌓았습니다. 둘레 330m 높이 4m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300m 정도의 성벽이 1.5m 높이로 남아 있습니다. 지세포진성은 조선 성종 21년(1490년) 수군 만호진(萬戶鎭)으로 처음 쌓았습니다. 인종 원년(1545년) 왜구의 침입을 우려하여 영남 지역 6개 군에서 25,000여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다시 쌓았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곳 책임자였던 강지욱(姜志昱)이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싸우다 패하여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선조 37년(1604년) 수군 만호진이 옥포의 조라포(助羅浦)로 옮겨가자 지세포진성은 폐허가 되었고, ..
- 대원암 표충사 주차장 뒤편에 산내 암자 대원암(大願庵)이 있습니다. 대원암은 원통암(圓通庵)이라고도 합니다. 이 암자는 조선 후기인 숙종 40년(1714년)에 약봉(藥峰)이 창건하였습니다. 이후 철종 9년(1858년)에 비구니 찬인(讚仁)이 중건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비구니 부성(富盛)이 거듭 중건하였습니다. 대원암은 지금도 비구니들의 수도 도량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찰 건물은 대웅전과 칠성각 및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 필봉 대원암에서 마주 보이는 산은 필봉(筆峰)입니다. 산봉우리 생김새가 좀 유별납니다. - 대웅전 내부 대웅전 내부입니다. 후불화로 근대에 그려진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있습니다. - 신중도, 1933년 신중도(神衆圖)입니다. 신중도는 누가 누구인지 알 ..
- 외가람각 밀양 표충사(表忠寺)에는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들이 몇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중문(中門) 수충루(酬忠樓)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에 있는 가람각(伽藍閣)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전각입니다. 그런데 수충루를 들어서면 문루 왼쪽에도 이런 가람각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각을 바깥에 있는 가람각이라 하여 외가람각이라고 합니다. - 외가람각 외가람각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이 전각은 높이가 보통 어른보다 약간 큰 정도로, 두 팔을 벌려 한 아름에 폭 감싸안을 수 있을 것 같이 앙증맞습니다. 가람각은 절의 영역을 수호하는 가람신(伽藍神)을 모신 집입니다. 가람은 절을 말하고, 가람신은 절을 지켜주는 신을 말합니다. 가람신은 불교와 직접 관계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토속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