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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청도 만화정에서 동쪽으로 골짜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륵댕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대비사(大悲寺) 못 미쳐 넓은 들을 바라다보고 있는 마을입니다. 이곳 보호각 안에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이 있습니다.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높이가 2.7m에 이르는 석불입니다.
-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1928년에 이 마을에 큰불이 났습니다. 이때 석불도 크게 손상되어 제 모습을 많이 잃었습니다. 특히 얼굴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되었습니다.
- 부분
그런데도 화재로 심하게 깨어진 머리는 알맞게 솟은 육계와 전체적인 윤곽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깨어지기 전에는 온화하면서도 풍만한 얼굴을 하였을 것입니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어깨는 곧고 당당합니다.
- 부분
자세는 결가부좌 했습니다. 가슴은 풍만하고, 허리는 잘록하며, 군살 없는 팔뚝은 힘이 넘쳐 보입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였습니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해서 왼쪽 무릎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밑으로 해서 오른쪽 무릎에 드리웠습니다.
법의는 우견편단입니다. 왼쪽 어깨를 덮은 옷이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대각선의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렸고, 얇은 법의로 신체의 윤곽이 잘 드러납니다.
- 뒷모습
뒷모습입니다. 왼쪽 어깨에 걸쳐 내려진 옷자락이 뚜렷합니다.
- 대좌 하대석
대좌는 팔각대좌입니다. 상·중·하대석으로 되어 있으며, 손상이 심합니다. 그 가운데 하대석은 그나마 조금 낫습니다. 이곳에는 큼직한 복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 광배
광배는 보호각 밖의 뜰에 있습니다. 이것 역시 크게 깨어져 두 조각이 남았습니다. 형태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두광과 신광 바깥에는 조금밖에 남지 않았지만 당초문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골짜기를 따라 동쪽으로 더 들어가면 대비사가 있습니다. 이 절은 다섯 갑사(岬寺) 가운데 서쪽 절에 해당하는 소작갑사(小鵲岬寺) 또는 대비갑사(大悲岬寺)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비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가기 전에는 이곳 미륵댕이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곳을 소작갑사터로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800m쯤 떨어진 산골짜기에 있는 절터도 소작갑사터로 알려졌습니다. 소작갑사터는 대체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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