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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기림사 대적광전

sky_lover_ 2012. 4. 17. 07:06

- 기림사 대적광전

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20년 넘게 머문 곳이 기원정사입니다. 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였습니다. 경주 함월산의 기림사(祇林寺)도 바로 그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인도 승려인 광유가 세워 임정사(林井寺)라 불렀다가 그 뒤 원효대사가 기림사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도 최소한 통일신라시대 초인 신문왕 이전부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 삼층석탑 쪽에서 바라본 대적광전

기림사의 본전은 대적광전입니다. 대적광전이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셔 놓은 법당을 가리킵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배흘림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집으로 웅건함을 갖추었습니다.

이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여섯 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졌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인조 7년(1629년) 다섯 번째로 지어질 때의 건물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병화를 모면하였으나 심하게 퇴락하여 정조 10년(1786년)에 경주부윤 김광묵(金光默)이 사재를 털어 중창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꽃창살

이 건물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앞면에 있는 꽃창살 문입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 색 바랜 그 모습에서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낍니다.


- 기림사 비로자나불좌상

대적광전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들 불상은 모두 흙을 빚어 만든 소조불입니다. 손의 위치와 자세만 다를 뿐 모습이 거의 같고 옷 주름까지 비슷합니다.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은 높이가 3.35m로 거대합니다. 높은 육계와 촘촘한 나발, 둥글고 박력 있는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장대한 상체보다 상대적으로 하체가 빈약해 보이지만 당당한 체구를 하고 있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주먹을 아래위로 포개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지인(智印)과 조선시대의 권인(拳印)을 묘하게 결합한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습니다. 법의는 일정한 두께로 두꺼워진 통견의(通肩衣)를 걸치고 있으며, 넓고 굵게 표현된 옷 주름은 장대한 체구와 어우러져 위엄을 느끼게 합니다.

1986년에
이 불상에서 고려시대 사경(寫經)을 비롯한 복장(服藏) 유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고려시대 이래로 기림사에 전해 내려오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에 이 불상을 만들면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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