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촌 마을 울산시 중구의 서쪽 지역에 유곡동(裕谷洞)이 있습니다.유곡동은 조선 정조 10년(1786년)에 유골(有骨)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고, 고종 31년(1894년)에 유곡(有谷)으로 불리다가 1914년에 다시 유곡(裕谷)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연 마을로 유곡(裕谷), 평동(平洞), 길촌(吉村)이 있었으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길촌을 제외한 다른 마을은 지금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하였습니다. - 길촌 마을 길촌 마을은 울산에서 광풍처럼 몰아친 개발 바람을 비껴간 산촌입니다. 길촌 마을은 조선 영조 때 길리(陸里)란 이름으로 기록에 처음 나타납니다. 일설에는 마을 뒤 장등산의 뜻을 따서 길다는 이름의 길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순조 때부터 길촌(吉村)이라 고쳐 쓰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 신복리 소나무 경남 사천시 용현면(龍見面)의 북쪽 지역에 신복리(新復里)가 있습니다. 이곳은 봉두산 아래 있으며, 마을은 신복(新復), 신영, 평기(坪基)가 있습니다. 신복리 지명은 예전에 '신복(申伏)'으로 쓰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복(新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고, 문헌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지명을 바꾸지 않았는지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 신복리 소나무 신복 마을 뒤편 언덕에 신복리 소나무가 있습니다. - 신복리 소나무 신복리 소나무 모습입니다. - 신복리 소나무 소나무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 신복리 소나무 소나무 솔잎 일부가 누렇게 말라 있습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 신복리 소나무..

- 수영성 남문 부산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 입구에 수영성 남문(水營城南門)이 있습니다.수영성 남문은 지금 수영성 남문이 있는 곳에서 약 200m 떨어진 골목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원래 자리에서 옮겨져 옛 수영초등학교(현재 신익아파트 자리) 정문으로 쓰였습니다. 1962년 6월에 수영초등학교가 옮겨간 뒤에는 방치되었다가, 1960년대 말에 미군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수영성(水營城)은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남문을 주작문(朱雀門)이라 하였고,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합니다. 이 성문은 홍예문(虹霓門)입니다. 지금은 홍예(虹霓)와 홍예 주춧돌, 그리고 좌우로 홍예 주춧돌과 거의 같은 높이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 하마비 수영성 남문 앞에 하마비(下馬碑..

- 대본리 소나무 경주시 감포읍의 남쪽 끝 지역에 대본리(臺本里)가 있습니다. 이곳은 본래 장기군 내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본과 가곡을 병합하여 대본리로 하였습니다. 행정리로 대본1리(가곡), 대본2리(회곡), 대본3리(대본)가 있습니다. 대본1리는 어업과 농업이 골고루 발달해 예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습니다. 가곡항과 인접한 마을은 어업이, 동쪽으로 난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은 농업이 발달하였습니다. 이곳의 중심 마을인 가곡 마을은 과거 '집실(執室)'이라고 불릴 만큼 2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400명 이상의 주민이 살았습니다. 대본1리는 자연산 횟집과 두치로 유명합니다. 자연산 횟집은 대부분 직접 바다로 나아가 건져 올린 생선을 손님상에 올린다고 합니다. 두치는..

- 계원1리 바닷가 포항 계원1리(溪院1里)는 '장기미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 마을은 양포(良浦) 바로 남쪽의 바다 끝 한 자락이 둥글게 휘어든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전에 '황계(黃溪)'라고 불렀습니다. 비가 오면 마을 전체가 누런 황토물로 뒤덮였고, 마을에 누런 떡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황계'라고 불리던 이름이 옛날 마을에 관리가 머물러 가던 곳인 평안원(平安院)이 있어 '계원(溪院)'으로 바뀌었습니다. - 성혈바위 계원1리 마을 안쪽의 언덕 비탈에 성혈(性穴)바위가 있습니다. 성혈바위는 거북을 닮았습니다. - 성혈바위 성혈바위 위쪽 면에 성혈이 여러 개 있습니다. 성혈은 지름이 10~15cm, 깊이는 8cm쯤 됩니다. - 계원리 소나무 성혈바위 뒤쪽에 계원리 소나무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