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리 느티나무 청도군 각남면 사리(沙里)는 화악산(華岳山)과 남산(南山, 오산(鰲山)이라고도 함) 사이에서 발원한 부곡천(釜谷川)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상당히 높은 지대에 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길게 늘어진 개울 좌우로 경작지가 있는데, 대부분이 다랑논입니다. 이곳에 한재에서 시작한 미나리 농사를 많이 짓고 있습니다. 사리의 옛 지명은 사을외(沙乙外)입니다. 곧 살외라고 하고, 산 밖이란 뜻이 됩니다. 에서는 화악산 밖에 있어서 산외(山外)라고 하였고, 에서는 사외리(沙外里)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사리는 산간 마을입니다. 청도읍 상리와 통하는 밤티재는 예나 지금이나 심산유곡으로 알려져 있고, 산서 지역의 삼대고산(三大高山) 중 이대고산(二大高山)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마을은 하사(下沙)와 ..
- 가양 마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德陽里)는 햇볕 받는 곳이라 하여 양촌(陽村)이라 하기도 하고, 햇볕을 더 많이 받도록 가양(加陽)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곳 마을은 가양, 덕암(근촌), 송월, 싱매(승마)가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마을은 가양입니다. 가양(加陽)은 덕양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으며, 옛 지명은 '가을양(加乙陽)'입니다. 이곳은 1709년 이전에는 밀양 땅이었습니다. 에는 "제내리(堤內里)였고, 동쪽에 극락제(極樂堤)가 있으며,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옛 탑이 남아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덕양리 삼층석탑 가양 마을 입구에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이 당산나무 옆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덕양리(덕양동) 삼층석탑입니다. 덕양리 삼층석탑은 에 극락제 남쪽 극락동에 남아 있었다는 탑입니다..
- 흑석2리 마을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黑石里)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지역으로,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많이 분포해 있습니다. 따라서 옛 기록에는 금물석(今勿石)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마을은 흑석1리(黑石)와 흑석2리(安局, 모개동)가 있습니다. 흑석1리인 흑석(黑石) 마을은 마을 앞의 들판에 선사시대의 지석묘가 정연하게 줄지어 있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검은 바위의 색을 그대로 본떠서 검은 돌, 즉 흑석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흑석2리인 안국(安局) 마을은 이 마을에 모개(모과의 사투리)가 많이 생산된다고 모개동이라 하였는데, 그 후 김안국 감사가 이 마을을 둘러 지나간 일이 있는 뒤에 김 감사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 흑석리 느티나무 흑석2리..
- 봉기1리 마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는 일제강점기 전까지 풍각시장이 열렸던 곳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유산역(幽山驛)이 있었던 곳입니다. 마을은 봉기1리와 봉기2리가 있습니다. 봉기리(鳳岐里) 명칭은 마을 뒷산의 형상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졌습니다. 봉기리 초입에 8세기에 조성된 3층 석탑이 있고, 그 주변에서 가야 및 신라 토기 파편이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곳은 오래전부터 삶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봉기리 느티나무 봉기1리 마을 입구에 노거수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봉기리 느티나무입니다. - 봉기리 느티나무 봉기리 느티나무 모습입니다. - 봉기리 느티나무 봄에 이 느티나무에 새잎이 돋으면,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고 전합니다..
- 미동 마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書院里)는 자계서원(紫溪書院)이 있는 마을로, 1400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 김극일(金克一)이 입향하여 정착한 김해김씨 집성촌입니다. 예전 지명은 운계리(雲溪里)이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죽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신원이 회복되어 탁영 김일손 등을 배향한 서원이 '자계(紫溪)'라는 사액(賜額)을 받고부터 서원리(書院里)가 되었습니다. 탁영 김일손이 무오사화로 극형을 당해 죽자,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이 핏빛으로 물들어 3일간 역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마을은 미동(美洞)과 신기(新基) 등이 있습니다. - 자계서원 자계서원(紫溪書院)은 서원리 미동 마을의 야산 자락 아래에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