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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대리 마애불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불현듯이 누구를 만났을 때처럼 그렇게 두대리 마애불을 다시 만났습니다.
율동
마애열반상을 찾아 율동마을 뒷산을 올랐습니다. 한참을 가도 마애열반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가다 보니 왔던 길이 아니었습니다. 되돌아가는 도중에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잘못 접어들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능선 아래로 난 길로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얼마간 내려가니 절집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두대리 마애불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능선 반대쪽으로 잘못 내려갔습니다. 순간 낭패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도
다 두대리 마애불과 무슨 인연이 있어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두대리 마애불과 율동 마애열반상은 둘 다 율동에 있습니다.
다만 이 두 마애불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은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골이라고 불렀는데,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율동(栗洞)으로
되었습니다.
- 본존불
두대리 마애불은 가운데에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두었고, 그 양쪽에 협시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두었습니다.
본존불은 어깨가 넓고 각이 져서 당당하고 건장하며, 오른손은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에 들어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습니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얇고 몸에
밀착되어 신체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본존불의 광배는 바위 면을 배 모양으로 얕게 파내고 두 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고, 그 가장자리에 불꽃무늬를 돌려서 거신광(擧身光)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대좌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서로 맞댄 연화좌인데,
선으로 새긴 윤곽만으로 간단히 표현하였습니다.
- 본존불의 머리 부분
이 마애불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부분은
본존불의 머리 부분입니다. 환조(丸彫)에 가깝게 돋을새김을 하여 입체감을 높였는데, 약간 각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 두대리 마애불
협시불은 본존불과 비교하면 평면적이어서 다소 밋밋합니다.
머리에는
보관이 없고, 머리카락을 높이 틀어 올렸습니다. 뒤로는 장식이 없는 두광을 새겨 놓았습니다. 두 협시불 가운데 관음보살이 대세지보살보다는 조금 더 입체감이 있습니다. 관음보살은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을 내려 보병을 쥐었습니다.
이 마애불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이 들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평면적이고 표현
또한 거칠고 조잡합니다. 조성 시기는 전성기 통일신라 조각 양식에서 조금 벗어난 8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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