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법사터 삼층석탑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흥법사터가 있습니다. 흥법사는 통일신라 말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번창하다 임진왜란 무렵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입니다. 지금은 이곳 절터에는 석탑과 부도비만 남아 있을 뿐 주위가 다 논밭으로 변했습니다. 이들 논밭 가운데에 있는 탑 주위는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시대에 만든 탑입니다. - 하층기단부의 안상무늬 지대석 위에는 하대석과 그 위의 면석을 한 돌로 만든 하층기단이 있습니다. 면석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이나 가운데기둥이 없이 3구씩의 안상(眼象)무늬를 새겼습니다. 안상무늬 안에는 땅에서 솟은 꽃 모양의 무늬를 또 새겼습니다. 이러한 것은 고려시대에서..
- 원주 흥법사터 강원도 원주 일원에는 약 100여 개의 절터가 있다고 전합니다. 그 가운데 흥법사터는 영봉산(靈鳳山, 403m)에서 흘러내린 작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언덕 앞쪽으로는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과 문막읍이 내려다보입니다. 이곳 절터 대부분은 논밭으로 변했고, 몇 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 흥법사터의 옛 모습 흥법사(興法寺)의 창건이나 중창, 그리고 폐사 시기에 대해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에 흥법사 부도비가 진공대사비(眞空大師碑)이며,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세워졌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흥법사 부도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으니, 절은 이미 통일신라 말에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권46 원주목(原州牧) 불우조(佛宇條)에 "흥법사는 건등산..
-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나긋나긋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가면 단양 가곡면 강가에 향산리 마을이 있습니다. '향산리(香山里)'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주변이 아름다운 조그마한 마을 한가운데에 석탑 하나가 서 있습니다.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입니다. 이 탑은 높이가 4.05m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꾼 후 향산사를 세웠고, 그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는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절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고, 절터에는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에 있었던 절에 대한 기록 또한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탑만은 처음 세워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 향산리 삼층석탑 ..
- 강릉 굴산사터 부도와 절터 굴산사(崛山寺)는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신라 문성왕 9년(847년)에 창건한 절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본산이었습니다. 절의 창건과 관련해서 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범일이 당나라에서 유학 생활을 할 당시에 명주(明州) 개국사(開國寺)에서 왼쪽 귀가 떨어진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말하기를 "저도 역시 고향 사람입니다. 집은 명주(溟州, 강원도 강릉 일대) 부근 익령현(翼嶺縣, 강원도 양양군 일대) 덕기방(德耆坊)에 있사오니, 조사께서 훗날 본국에 돌아가시거든 꼭 저의 집을 지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귀국 후 범일국사는 그 스님의 뜻에 따라 사굴산 아래에 굴산사를 창건하였다. 당시 굴산사는 강릉 일대에서 가장 큰 절이었고,..
- 굴산사터 당간지주 굴산사터 당간지주는 돌을 대충 다듬어 만들어 투박한 그대로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이 당간지주를 마주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의 울림을 느낍니다. 예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그 어떤 당간지주보다 더 큰 감동을 줍니다. 그 앞에 서면 그 당당함 앞에 마냥 전율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느낌은 고선사터 삼층석탑 이후 처음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나의 마음을 크게 흔든 것일까요? - 굴산사터 당간지주 굴산사터 당간지주는 그 높이가 5.4m에 이르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입니다.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사굴산문의 본산인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 9년(847년)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당간지주도 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