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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굴산사터 부도와 절터

sky_lover_ 2011. 11. 15. 08:21

- 강릉 굴산사터 부도와 절터

산사
(崛山寺)는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신라 문성왕 9년(847년)에 창건한 절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본산이었습니다. 절의 창건과 관련해서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범일이 당나라에서 유학 생활을 할 당시에 명주(明州) 개국사(開國寺)에서 왼쪽 귀가 떨어진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말하기를 "저도 역시 고향 사람입니다. 집은 명주(溟州, 강원도 강릉 일대) 부근 익령현(翼嶺縣, 강원도 양양군 일대) 덕기방(德耆坊)에 있사오니, 조사께서 훗날 본국에 돌아가시거든 꼭 저의 집을 지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귀국 후 범일국사는 그 스님의 뜻에 따라 사굴산 아래에 굴산사를 창건하였다.

당시
굴산사는 강릉 일대에서 가장 큰 절이었고, 전성기에는 사찰 당우의 반경이 300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당시 승려 수가 무려 200여 명에 달하였고, 쌀 씻은 뜨물이 동해까지 흘렀다고 합니다. 폐사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멸망과 함께 절도 폐사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 굴산사터

굴산사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와 범일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 그리고 석불좌상 등이 남아 있습니다. 1936년 홍수 때 이곳에서 6개의 주춧돌이 노출되었고, 이때 '사굴산사'라는 글자가 발견됨으로써 이곳이 굴산사가 있었던 곳임이 밝혀졌습니다.

지금 이곳 절터는 농경지로 변해 절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한 결과 그 크기가 동·서로 140m, 남·북으로 250m였고, 승방지·회랑지·탑지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지금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군데군데 파헤쳐져 있습니다.

- 석천

길에서 부도가 있는 곳으로 가기 조금 전에 범일국사의 탄생 설화가 깃들어 있는 우물이 있습니다. 석천(石泉)이라고 하는 우물입니다. 이 우물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학산마을에 한 양갓집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 처녀가 석천(石泉)에서 바가지로 물을 뜨니 물속에 해가 있었습니다. 물을 버리고 다시 떴는데 또 해가 있었습니다. 그 물을 마신 뒤 처녀에게 태기가 있었습니다. 그 후 처녀는 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처녀는 마을 뒷산 학바위 밑에 아이를 버렸습니다. 괴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다음날 그곳에 가보니 학과 산짐승들이 모여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비범하게 여겨 다시 데려다 키웠는데, 아이가 커서 범일국사가 되었습니다.

- 굴산사터 부도

굴산사터 부도는 절터 뒤편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습니다. 범일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입니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八角圓堂) 형식을 기본으로 삼았으나, 몇몇 곳에서 새로운 수법이 더해졌습니다. 특히 하대석에서 그러한 경향이 뚜렷해 그 모습이 마치 활짝 핀 한 송이 연꽃을 옮겨다 놓은 듯합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탑신이 지나치게 낮고 작으며, 지붕돌은 너무 크고 무거워 보입니다. 또한, 조각에서도 섬약함에 치우쳐 위축된 느낌이 듭니다.

- 굴산사터 부도

널찍한 하대석의 팔각 하단부에는 면마다 사자상를 새겼고, 중단부는 커다란 연꽃 모양을 이루며 구름무늬를 새겼습니다. 그 위로는 받침턱을 내고 아담한 반구형 상단부가 놓여 있습니다.

 

이곳 상단부에는 소용돌이 구름무늬를 새겼습니다. 이곳 윗면 주위에 수구(水溝)와 같은 홈이 패어 있습니다. 이러한 수구형의 수법은 고려시대 석조 유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굴산사터 부도의 이전 모습

그런데
커다란 연꽃 모양의 중단부는 새로 해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사진에선 보이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그리고 바로 곁에 원래 것으로 보이는 파편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중대석은 둥근 모양입니다.
면마다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두드러지게 새겼고, 모서리마다 구름 기둥을 새겼습니다.

- 굴산사터 부도

상대석에는 여덟 개의
솟은 연꽃(仰蓮)무늬를 새겼는데, 연꽃무늬 내에 다시 큼직한 꽃무늬를 새겼습니다.

탑신은 팔각형이고,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이곳에 모서리기둥과 문비를 새겼지만 희미하여 잘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붕돌 역시 탑신처럼 팔각형이고, 아랫면을 단순하게 처리했습니다.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고, 우동(隅棟)은 뚜렷하며, 따로 귀꽃과 같은 장식은 없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보개, 보주가 얹혀 있습니다.

이 부도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범일국사는
진성여왕 2년(888년)에 입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도의 구조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후대인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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