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 법천사터한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가을날 찾은 법천사터는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텅 빈 절터가 발굴조사 때문인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어 더욱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법천사(法泉寺)는 원래 '법고사(法皐寺)'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법천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된 이 절은 고려시대에 들어서 지광국사(智光國師) 때에 이르러 고개 너머에 있는 거돈사와 함께 당대 최고의 절로 발전하였습니다. 법천사는 이름 그대로 한때 진리가 샘물처럼 솟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후 폐사되어 지금은 정적만이 가득합니다. 법천사터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내력을 말해주듯 수령이 수백 년이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 흥법사터 진공대사탑비흥법사터(興法寺址)에는 삼층석탑 부근에 부도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 부도비는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진공대사(眞空大師, 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비문이 새겨진 비신은 깨어져 그 비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이 남아 있습니다. - 진공대사탑비 진공대사는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귀국한 후 고려 태조의 왕사로서 크게 예우받았습니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습니다. 비문은 진공대사가 신라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계율을 배우다 입당하여 정원대사(淨圓大師)의 법을 수학하고 돌아와 태조로부터 왕사의 예우를 받고 태조의 명으로 흥법사에 주석하다 입적한 생..
- 흥법사터 삼층석탑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흥법사터가 있습니다. 흥법사는 통일신라 말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번창하다 임진왜란 무렵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입니다. 지금은 이곳 절터에는 석탑과 부도비만 남아 있을 뿐 주위가 다 논밭으로 변했습니다. 이들 논밭 가운데에 있는 탑 주위는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시대에 만든 탑입니다. - 하층기단부의 안상무늬 지대석 위에는 하대석과 그 위의 면석을 한 돌로 만든 하층기단이 있습니다. 면석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이나 가운데기둥이 없이 3구씩의 안상(眼象)무늬를 새겼습니다. 안상무늬 안에는 땅에서 솟은 꽃 모양의 무늬를 또 새겼습니다. 이러한 것은 고려시대에서..
- 원주 흥법사터 강원도 원주 일원에는 약 100여 개의 절터가 있다고 전합니다. 그 가운데 흥법사터는 영봉산(靈鳳山, 403m)에서 흘러내린 작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언덕 앞쪽으로는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과 문막읍이 내려다보입니다. 이곳 절터 대부분은 논밭으로 변했고, 몇 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 흥법사터의 옛 모습 흥법사(興法寺)의 창건이나 중창, 그리고 폐사 시기에 대해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에 흥법사 부도비가 진공대사비(眞空大師碑)이며,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세워졌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흥법사 부도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으니, 절은 이미 통일신라 말에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권46 원주목(原州牧) 불우조(佛宇條)에 "흥법사는 건등산..
-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나긋나긋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가면 단양 가곡면 강가에 향산리 마을이 있습니다. '향산리(香山里)'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주변이 아름다운 조그마한 마을 한가운데에 석탑 하나가 서 있습니다.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입니다. 이 탑은 높이가 4.05m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꾼 후 향산사를 세웠고, 그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는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절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고, 절터에는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에 있었던 절에 대한 기록 또한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탑만은 처음 세워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 향산리 삼층석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