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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원주 법천사터

sky_lover_ 2011. 11. 20. 07:16

- 원주 법천사터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가을날 찾은 법천사터는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텅 빈 절터가 발굴조사 때문인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어 더욱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법천사(法泉寺)
원래 '법고사(法皐寺)'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법천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된 이 절은 고려시대에 들어서 지광국사(智光國師) 때에 이르러 고개 너머에 있는 거돈사와 함께 당대 최고의 절로 발전하였습니다. 법천사는 이름 그대로 한때 진리가 샘물처럼 솟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후 폐사되어 지금은 정적만이 가득합니다.

법천사터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내력을 말해주듯 수령이 수백 년이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
서원말'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이곳은 또 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 유방선(柳方善, 1388~1443)이 이곳에 머물며 유교의 강학을 하였는데, 그 당시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이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 당간지주

절의 입구에 있기 마련인 당간지주가 지금은 마을의 뒤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엔 절터의 남쪽으로
해서 절로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신라 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입니다.

- 법천사터의 석물들

예전에 이곳 법천사에서 퍼져 나간 향나무가 이 일대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야산에도 잡목들만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향나무 향기를 맡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예전의 법천사를 떠올리게 해주는 것은 이곳에 남은 석탑 부재들과 광배, 연화문이 새겨진 배례석, 그리고 어디에 쓰였는지도 알 수 없는 석물들입니다. 이들은 부도비 맞은 편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 지광국사 현묘탑비

폐허로 변한 이곳 절터에서 한때 번성했던 법천사의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지광국사 현묘탑비로 불리는 부도비입니다.

이 부도비는
지광국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그의 삶만큼이나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 정성스러운 손맛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 법천사터

법천사는 지광국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것은
지광국사가 여기서 출가하고 열반에 든 것도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절이 크게 번창했기 때문입니다.

지광국사는 물과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이 '수몽(水夢)'이었고, 법명 역시 '해린(海鱗)
'이었습니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이 '수몽(水夢)'이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하천과 우물이 흘러넘치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067년 10월 23일, 남한강으로
휘돌아 흘러드는 법천천을 바로 눈앞에 둔 이곳 법천사에서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저녁에 지광국사는 적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임종을 앞둔 국사가 "바깥 날씨가 어떤가?"하고 물으니, 제자들이 "이슬비가 내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지광국사는 곧 편안히 오른쪽으로 누워 열반에 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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