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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법사터 진공대사탑비
흥법사터(興法寺址)에는 삼층석탑 부근에 부도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 부도비는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진공대사(眞空大師, 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비문이 새겨진 비신은 깨어져 그 비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이 남아 있습니다.

- 진공대사탑비
진공대사는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귀국한 후 고려 태조의 왕사로서 크게 예우받았습니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습니다.
비문은 진공대사가 신라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계율을 배우다 입당하여 정원대사(淨圓大師)의 법을 수학하고 돌아와 태조로부터 왕사의 예우를 받고 태조의 명으로 흥법사에 주석하다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였습니다. 음기는 대사가 태조에게 올린 표(表)와 태조가 대사에게 내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맨 끝에 상좌·장로 등의 제자와 낭중·시랑 등의 직명과 내말의 관등을 가진 재가제자(在家弟子)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 진공대사탑비의 옆모습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머리 위 네모난 구멍에는 뿔을 따로 만들어 꼽은 것 같습니다.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습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 귀부와 이수
이수의 앞면 가운데에 '진공대사(‘眞空大師)'라는 전액(篆額)이 전서체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수에는 전체적으로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습니다. 특히 전액 바로 옆에는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웅장하면서도 섬세하여 당시의 높은 예술 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이수에 새겨진 용
이수 앞면의 양 귀퉁이에도 또 다른 용이 앞을 향해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 진공대사탑비의 뒷모습
이수의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거북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비신은 조각이 나버렸고, 함께 있던 부도도 오래전에 이곳을 떠났습니다. 곧추세운 발톱은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앞을 향해 내달릴 것만 같은데, 무슨 말을 더 들려주고 싶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