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오야리 삼층석탑 경주에 있는 탑을 찾아 나선 지도 꽤 여러 해가 되어 갑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그럼에도 찾아보아야 할 탑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야리 삼층석탑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오야리로 향했습니다. 오야리 삼층석탑은 경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7번 국도의 동쪽 오야리 산 중턱에 있으며, 절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소광사(少光寺)라는 작은 절이 있습니다. - 오야리 삼층석탑 탑은 절의 대웅전과 진영각 사이에 있습니다. 전탑을 모방한 모전석탑 계열의 이 탑은 큰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바위 윗면의 평평한 곳에 2단의 각형 몸돌받침을 놓고 3층 탑신부를 올렸습니다. - 감실 부분 1층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을 새기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
- 강릉 허난설헌 생가 강릉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가던 날 늦은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조선시대 남존여비의 유교 사회에 태어나 자신이 가진 재능을 채 피워보지 못하고 지고만 허난설헌의 기구한 삶을 말해주듯이 말입니다.이곳은 선교장과도 그리 멀지 않은 경포호 바로 남쪽에 있습니다. 이곳 강릉은 허난설헌의 외가가 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허난설헌이 태어났고, 허균(許筠)이 살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허난설헌은 의 저자인 허균의 누나이기도 합니다. - 허난설헌 생가 앞에 있는 숲 허난설헌 생가 앞에는 제법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습니다. 운치가 넘치는 숲 가운데는 군데군데 쉴 수 있게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 사랑채 허난설헌 생가의 전체적인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곳간..
- 강릉 선교장 강릉을 대표하는 한옥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누구나 선교장(船橋莊)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선교장은 송림이 우거진 낮은 동산을 뒤로 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입니다. 효녕대군의 11세손으로 가선대부였던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이 숙종 29년(1703년)에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원래는 안채만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집이었으나, 그 후로 계속 증축이 이루어져서 99칸 집을 이룬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을 '선교장(船橋莊)'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옛날 경포호가 장장 30여 리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였을 때에 이곳을 배로 건너다녔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집이 뱃머리와 같은 형태의 터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 활래정 선교장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 갈대 숲길 (2008년 9월 14일) 을숙도를 찾을 때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그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을숙도는 철새들이 찾아들던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이런저런 편의시설의 설치와 함께 도시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들이 요즈음 들어 더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을숙도 북쪽에 해당하는 일웅도는 생태공원 조성공사로 말미암아 옛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이러한 변화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 낙동강하구 에코센터가 있는 곳의 아래쪽 부분입니다. 즉 을숙도 남쪽 부분입니다. 이곳은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덕분에 개발 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곳마저도 몇 년 사이에 꽤 많이 변했습니다. 그..
- 을숙도 을숙도에서 어디가 가장 아름다운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을숙도 남단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그 가운데서 으뜸으로 꼽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곳이 아직은 사람의 손이 가장 덜 탄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을숙도 남쪽 끝 부분에서 바다 쪽으로 바라다본 모습입니다. 이제 막 해가 넘어가려는 섬이 가덕도입니다. - 을숙도 다대포 앞바다 쪽으로 바라다본 모습입니다. 갈색으로 물든 갈대밭이 인상적입니다. - 을숙도 명지주거단지 쪽으로 바라다본 모습입니다. - 을숙도 을숙도대교 쪽으로 바라다본 모습입니다. - 을숙도 역시 을숙도대교 쪽으로 바라다본 모습입니다. 을숙도 갈대밭도 예전만은 못합니다. 이곳에도 불어닥친 개발바람으로 갈대밭이 많이 줄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을 찾는 철새들도 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