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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용화사
물금에서 원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얼마 가다가 좁은 내리막길을 따라 낙동강 쪽으로 내려가면 오봉산 끝자락에 있는 용화사에 이르게 됩니다. 이 길은 좁고 가팔라서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좀 더 쉽게 가는 길이 생겼습니다. 물금취수장을 지나 굴다리 아랫길로 해서 경부선 철로를 건너가면 바로 용화사입니다.
이 절의 옛 이름은 미륵당으로 전해집니다. 조선 성종 2년(1471년)에 통도사 승려 성옥(性玉)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의 발자취는 전하지 않고, 1990년대에 산신각을 새로 짓는 등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절은 법당, 산신각, 요사채 등으로 되어 있고, 이곳 법당에 오래된 석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 용화사 앞모습
이 절은 낙동강 가에 있습니다. 따라서 절 앞쪽으로 낙동강이 흐릅니다. 그러나 펜스가 가로막고 있어 낙동강을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 용화사 앞 철길
펜스 너머로는 경부선 철로가 지나갑니다. 철로가 지나가기 전 이곳은 나룻배 오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내지르는 굉음만 요란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용화사에서 바라보는 것은 까마득히 먼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용화사는 어떻게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절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사월초파일 이곳으로 발길을 향하게 된 것은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때문입니다.
이 불상은 얼굴이 사각형에 가까우며, 가늘고 긴 눈과 넓적한 코, 그리고 작은 입술을 지녔습니다. 체구는 당당한 어깨와 양감이 풍부한 팔과 다리 등으로 힘 있고 풍만감이 있습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였고,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드러난 발바닥에는 주름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입니다. 간략하게 표현된 옷 주름이 몸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 화불(왼쪽)과 비천상(오른쪽)
광배는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입니다. 윗부분이 약간 파손되었습니다.
두광과 신광은 두 줄의 선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두광 안에는 팔판연화문(八瓣蓮華文)이 새겨져 있고, 그 바깥으로 불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광배 윗부분에 화불 1구, 가운데 부분 양 측면에 비천상, 아랫부분 양 측면에 공양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 대좌
대좌는 팔각연화문 대좌입니다.
상대석에는 단판 연화문이 두 겹으로 새겨져 있고, 중대석에는 면마다 공양상 또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대석에는 복판 연화문이 두텁게 새겨져 있습니다.
-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말이나 고려시대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용화사가 창건되기 훨씬 이전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상이 어떻게 이곳에 있게 된 걸까요?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600여 년 전 낙동강 건너 김해 고암마을에 살던 한 농부가 낙동강에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물체가 있어 건져내어 보니 이 불상이었습니다. 이 불상을 김해시 상동면 감노리의 옛 절터에 모셔 두었는데, 구한말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1947년 무렵 부근 강변 밭에 나뒹굴고 있는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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