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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포스터

 

경남도립미술관에서 2022년 10월 28일부터 2023년 1월 25일까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영원한 유산>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대구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의 기증 컬렉션 중 60점을 경남 지역에서 처음 공개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80여 년의 한국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며, 한국미술사를 대변할 수 있는 거장 40여 명의 한국화, 회화, 조각 등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화>

 

- 김기창, <투우>, 1956, 종이에 수묵채색, 168×301cm, 국립현대미술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의 <투우>입니다. 두 마리 소가 싸우는 역동적인 모습이 실감 나게 그려졌습니다. 화가의 뛰어난 붓놀림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김기창의 뛰어난 붓놀림은 일제강점기에 일제 군국주의를 떠받쳐 주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그림을 통해 일제의 전쟁 동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습니다. 그의 친일 활동은 친일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이었던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에게 그림을 배운 것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 변관식, <금강산 구룡폭>, 196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120.5×9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은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과 함께 동양화의 대표적 화가입니다. 그는 1917년 도화서 화원을 지낸 외조부 조석진(趙錫晋)이 교수로 있는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림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만난 이상범, 노수현, 이용우와 1923년 3월 결성한 동연사(同硏社)를 중심으로 신구화법(新舊畵法)의 절충을 시도하였습니다.

변관식은 1925년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남화가(南畵家)인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에게 사사하였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1937년부터 금강산 여행을 시작으로 전국의 명산을 주유하며 실경을 사생(寫生)하는 등 독자적 화풍을 모색하였습니다. 변관식은 일제 말기 은둔하면서 금강산 풍경을 세세하게 스케치했는데, 해방 후 분단으로 인해 더는 금강산에 갈 수 없게 되자 금강산을 더욱 부지런히 화폭에 담았습니다.

 

<금강산 구룡폭(金剛山 九龍瀑)>은 해방 전 여러 차례 금강산을 오가며 봤던 구룡폭포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독특한 필법인 '적묵(積墨) 화법'이 정점에 도달한 시기에 그려졌습니다. 구룡폭포와 주변의 바위 모습이 거칠지만, 특유의 깊이 있고 그윽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회화>

 

- 구본웅, <정물>, 193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31x33.5cm, 국립현대미술관

 

서산(西山) 구본웅(具本雄)은 한국의 툴루즈 로트렉(Toulouse-Lautrec)으로 불리는 화가입니다. 그는 시인 이상(李箱)을 그린 <친구의 초상>이란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구본웅은 창문사(彰文社)를 경영한 구자혁(具滋爀)의 아들로, 2살 무렵 입은 척추 장애로 평생을 단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1939년에 조선 화단의 '일본 화단화'를 주장하는 글을 썼고, 1940년에 미술인들의 총후봉공(銃後奉公)을 주장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하였습니다.

 

구본웅은 당대 인상주의 중심에서 벗어나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주의 등 다양한 서구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모더니스트로 평가받습니다. <정물>은 1930년대 그의 과도기적 실험을 보여줍니다.

 

- 이인성, <설경>, 1930년대, 종이에 수채, 28×38.7cm, 국립현대미술관

 

아소(我笑) 이인성(李仁星)은 대구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1930년대 조선 미술계를 주름잡으며 천재 화가로 불렸습니다.

 

대구 출신인 그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해서 한때 대구에서 "너 커서 이인성 되겠구나!"라는 말은 그림에 소질 있는 아이에게 하는 가장 큰 칭찬이었다고 합니다. 삼성가에서 이인성의 그림을 소장하게 된 것에는 이런 이유도 한몫하였을 것입니다.

 

이인성은 다양한 서구 화풍을 흡수하면서도 독특한 조형, 상징적 소재, 그리고 풍부하고 강렬한 색채로 한국적 풍토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설경>은 이러한 이인성의 작품 세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 이인성, <석고상이 있는 정물>, 1934, 종이에 수채, 55.2×74.6cm, 대구미술관

 

이인성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도 17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천부적인 재능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 후 후원자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조선미전에 매년 유화와 수채화를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고, 일본수채화회전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일본 내에서 '조선의 천재'로 소개되었습니다.

 

<석고상이 있는 정물>은 이인성의 예술세계가 절정을 이루었던 1930년대에 그려졌습니다. 화가는 서구 미술의 한 장르인 정물화를 그리면서 동양화 붓을 사용하여 특유의 빠른 필치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서 소재가 된 대상물은 강조와 생략을 통한 묘사가 돋보이며, 강렬한 원색이지만 수채 물감 특유의 맑은 느낌이 더해진 독특한 분위기가 눈길을 끕니다.

 

- 이중섭, <나무와 남자>, 1941, 엽서에 수채, 잉크, 14×9.1cm, 국립현대미술관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화가입니다. 그는 천진한 성향과 작가 정신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한국 미술사에서 신화적 화가입니다. 

 

이중섭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고,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국민 화가입니다. 이런 화가가 이중섭을 제외하고 누가 있을까요?

 

- 이중섭, <가족>,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40×28cm,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의 그림에는 소, 닭, 어린이, 가족 등이 많이 등장하며, 향토적 요소와 동화적이고 자전적인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가족>은 그의 자전적 요소가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 등장하는 남녀와 두 어린이는 이중섭 가족을 연상시킵니다. 거의 나체로 보이는 인물들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서로 바라보며 손을 뻗어 보듬고 있습니다. 서로 신체를 접촉하고 있는 모습은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인데, 가족과 따로 사는 불안한 그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가족>은 1950년대 전반에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1950년대 전반인 1952년 2월에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떠나고 이중섭만 남게 됩니다. 이 그림은 가족이 함께 지내는 행복한 모습의 그림이지만,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생각하면 이 그림은 떠나보낸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 1956, 캔버스에 유채, 32.7×21cm, 국립현대미술관

 

미석(美石) 박수근(朴壽根)은 전쟁 후 황폐해진 땅에서 소박하지만 끈질기게 하루하루를 살아간 당시 서민 삶의 모습을 진실되고 숭고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박수근은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같은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점차 구도와 세부 묘사, 색채와 질감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그는 중성적인 색채와 투박한 질감, 질박한 선묘 등 특유 기법으로 평범한 일상 풍경을 담았습니다.

 

- 박수근, <나무아래>, 1960년대, 캔버스에 유채, 33.2×24.cm, 국립현대미술관

 

<나무아래>는 화가의 회화적 기량이 절정이었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나목(裸木)을 전면에 크게 내세워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화가의 전형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줍니다.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 아래에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여인, 오른쪽 아래에는 휴식을 취하는 듯 보이는 두 여인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인과 나무는 단순한 형태와 굵은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갈색조의 색감과 거친 질감이 강조되었습니다. 완숙기에 접어든 작가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줍니다.

 

- 박수근, <농악>, 1960년대, 캔버스에 유채, 161.5x96.7cm, 국립현대미술관

 

<농악>은 농악대 4명의 움직임을 간결하고 소박한 선으로 그려낸, 박수근 그림치고는 대작입니다.

 

위 그림과 비슷한 그림이 2007년 3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20억 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후 2009년 6월 K옥션 경매에 이 그림이 경매에 다시 나왔으나 유찰되었습니다. 당시 박수근 그림의 위작 논란이 유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오지호, <항구풍경>, 1970, 캔버스에 유채, 65×90.5cm, 전남도립미술관

 

오지호(吳之湖)는 서구 인상주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한국적 인상주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그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 들판, 설경 등 풍경과 화초, 과일 등 사물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은 밝은 색채로 우리나라 특유의 맑은 대기와 자연 풍경의 청명함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항구풍경>은 큰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호남의 큰 항구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세밀한 묘사보다는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과 선박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해 빠른 붓질로 표현하였습니다. 오지호의 그림에서 항구는 자유를 상징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합니다. 오지호는 항구에서 완곡한 곡선형의 배와 그런 배가 떠날 수 있게 끝없이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습니다.

 

- 천경자, <킨샤사공항>, 1974, 종이에 채색, 24x17.5cm, 국립현대미술관

 

천경자(千鏡子)는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한 화가입니다. 그녀는 꿈, 사랑, 환상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투영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천경자는 1969년부터 유럽, 미국, 중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킨샤사공항>은 콩고 킨샤사의 여인들을 묘사한 작은 크기의 그림입니다. 여인들의 강렬한 원색 옷의 대비가 돋보입니다.

 

- 변종하, <오리가 있는 풍경>, 1976년, 천에 유화, 85.7x85.7cm, 대구박물관

 

변종하(卞鐘下)는 대구에서 태어나 서진달에게 서양화를 배웠습니다. 그의 화폭 안에는 꽃과 새, 나무, 자연과 삶과 같은 친근한 소재들이 서정적이며 시적인 분위기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 다양한 재료와 기법에 영향을 받아 귀국 후 요철회화(凹凸繪畵)를 접목한 자신만의 부조적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오리가 있는 풍경>은 이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 장욱진, <원두막이 있는 풍경>, 1982, 캔버스에 유채, 31.5×23.7cm,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張旭鎭)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한국적 추상화를 확립한 화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유아적이고 토속적인 감성을 추상화시킨 독보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아동화(兒童畵)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기법으로 동심의 세계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그림은 소품(小品)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한결같이 생활의 주변, 즉 마을, 가족, 가로수, 건물, 자전거, 어부 등 동화의 이미지를 좇아 원초적인 생략법을 썼습니다.

 

- 장욱진, <마을>, 1984, 캔버스에 유채, 35.5×27cm,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은 일상적 이미지를 정감 있는 형태와 독특한 색감으로 화폭에 그려냈습니다. <마을>은 대상의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하고 최소한의 선으로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하였습니다. 

 

- 장욱진, <가족>, 1986, 캔버스에 유채, 41×31.7cm,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은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근현대 화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그림은 어린아이,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합니다.

 

그는 덕소, 수안보, 신갈 등지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평생 작품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주로 한눈에 들어 오는 작은 화면에 가족, 나무, 새 등 친근하고 소박한 소재를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하여 마치 동화와 같은 느낌을 주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 방혜자, <빛의 울림>, 2011, 부직포에 자연채색, 170x198cm, 국립현대미술관

 

재불(在佛) 화가 방혜자(方惠子)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녀는 '빛의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방혜자는 1937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56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당시 교수였던 화가 장욱진에게 배웠습니다. 1961년 첫 프랑스 국비 유학생으로 선정돼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유년 시절 겪은 한국전쟁의 고통에서 비롯된 빛에 대한 갈망을 필생의 화두로 삼아 작업하였습니다. 2022년 9월 15일 프랑스 파리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각>

 

- 김종영, <작품 70-1>, 1970, 나무, 17.5×46×37cm, 국립현대미술관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은 한국현대추상조각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조각가입니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문화를 고루 섭렵하고, 세계에 대한 통찰을 예술의 목표로 삼아 이를 조형화하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에 그의 조각품이 전시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 그의 생가가 있습니다. 김종영은 창원이 자랑하는 조각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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