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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계동 감분마을 은행나무
삼계동(三溪洞)은 김해 시청에서 한림면과 생림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삼계동의 옛 이름은 북곡리(北谷里)였습니다. 좌부면(左部面)의 삼거리로서 세 갈래 길이 있다 하여 삼지원(三岐院)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지금 이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들 아파트 단지에 조금 벗어난, 삼계사거리 부근에 감분마을이 있습니다. 감분 마을회관 맞은편 길가에 오래된 은행나무와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 행단송비
은행나무 아래에 비가 있습니다. 1973년 입추에 은행나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행단송비(杏亶頌碑)입니다.
이 비에 따르면, 이 은행나무는 약 300년 전에 들어와 살던 남평 문씨(南平文氏) 집안이 약 200년 전쯤에 선조 문익점(文益漸, 1329~1398)이 산청군 단성면에 목화씨를 시배(始培)하며 심었던 은행나무에서 묘목을 얻어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 삼계동 감분마을 회화나무
은행나무 옆에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 삼계동 감분마을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은행나무 위세에 눌린 탓인지 나무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못합니다.
- 삼계동 감분마을 회화나무
회화나무 나이는 은행나무와 비슷한 300년쯤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한림면 명동리 인현마을 왕버들
한림면(翰林面) 남쪽 지역에 명동리(明洞里)가 있습니다. 이곳에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한림IC가 있습니다.
명동리 지명은 서봉산(棲鳳山)의 봉황(鳳凰)이 운다고 명동(鳴洞)이라 하다가, 후에 명동(明洞)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은 낙산마을, 두례마을, 인현마을, 금음마을이 있습니다. 이들 마을 주위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꽤 어수선합니다.
인현마을은 한자로 고개 '현'(峴)이니 '인티'로도 불렸던 고개마을입니다. 이곳은 서봉산 자락에 명동저수지가 키워낸 들판을 앞에 두고 있어 아늑합니다. 그러니 명동리 마을 가운데 제일 조용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한림면 명동리 인현마을 왕버들
이곳 마을회관 부근 길가에 오래된 왕버들 한 그루가 있습니다.
지금 왕버들은 상태가 썩 좋지 못합니다. 게다가 나무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 한림면 명동리 인현마을 왕버들
왕버들 나이는 150~200년 남짓 된다고 합니다.
왕버들의 큰 줄기는 중간에서 부러져 없어졌습니다. 밑동 부위에서 자란 가지 하나만으로 겨우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신세입니다.
- 한림면 병동리 어병마을 느티나무
명동리 서쪽에 병동리(屛洞里)가 있습니다.
이곳 지명은 700여 년 전인 고려 충렬왕 때 왕이 이 지역 출신인 김관(金管, 1250~1345)에게 병풍을 하사하였다고 하여 어병동(御屛洞)이라 한 데서 유래합니다. 이후 하북면이 상북면과 합쳐 이북면이 되면서, 소업마을, 범곡마을, 가달마을을 합쳐 병동리가 되었습니다.
- 한림면 병동리 어병마을 느티나무
병동리도 명동리처럼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마을은 어병바을과 범곡마을이 있습니다. 범곡마을은 마을 자체가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어병마을은 범곡마을보다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그러나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을 입구는 아예 공단으로 변했고, 마을 옆으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어병마을 남쪽 들판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 나이는 약 200년이 된다고 합니다.
- 한림면 병동리 어병마을 느티나무
어병마을 느티나무는 당산나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당산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마을의 희로애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래 지켜봐 왔습니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어병마을 주민이 4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당시 병동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주민 수가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어디 이곳뿐이겠습니까?
- 한림면 금곡리 금곡마을 팽나무, 상수리나무, 회화나무
한림면 북쪽 지역에 금곡리(金谷里)가 있습니다.
금곡리는 고려 때부터 옛 교통로로서 금곡역(金谷驛)이 있었다고 합니다. 금곡리 가운데쯤에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금곡(金谷)마을이 있습니다. 금곡마을은 가야 시대에 야철장이 있었다고 하여 쇠실이라 하기도 합니다.
- 한림면 금곡리 금곡마을 팽나무, 상수리나무, 회화나무
금곡마을 어귀 길가에 나무들이 있습니다. 팽나무, 상수리나무, 회화나무입니다.
- 팽나무
나무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는 팽나무입니다. 400여 년 전 광주 노씨(光州盧氏)들이 입촌을 기념하여 지금은 없어진 상수리나무와 함께 심었다고 합니다.
팽나무는 나무 바닥에서 벌어진 가지 하나가 몸통과 따로 비스듬히 뻗어 올랐습니다. 높이는 약 14m, 가슴높이 직경은 약 1.4m입니다. 수령은 약 400년입니다.
- 상수리나무
이곳에 있는 상수리나무입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팽나무 길 맞은편에 팽나무와 함께 심은 상수리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상수리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신목(神木)으로 모셔졌습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큰 상처를 입었고, 2007년에 외과 수술을 하여 그런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고사하였는지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 회화나무
팽나무와 상수리나무 사이에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노거수라고 하기에는 아직 많이 어립니다.
- 생림면 안양리 신안마을 팽나무, 회화나무
생림면(生林面)은 김해를 대표하는 산인 무척산(無隻山)이 있는 곳입니다. 지명은 생철(生鐵)과 봉림(鳳林)에서 한 자씩 가져와 붙여졌다고 합니다.
생림면의 북쪽 끝에 안양리(安養里)가 있습니다.
안양리는 생림면의 북쪽 끝이지만, 마사리(馬沙里)와 도요리(都要里) 사이에 끼어 있어 낙동강과는 바늘 끝만큼 접해 있습니다. 안양(安養)이라는 지명은 1914년에 창암(蒼岩), 신안(新安), 선곡을 합치면서 붙여졌습니다.
- 생림면 안양리 신안마을 팽나무, 회화나무
신안(新安)마을은 창암마을과 선곡마을 사이에 있습니다. 신이마을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은 약 300년 전 파평 윤씨(坡平尹氏)가 합천에서 거주지를 옮겨와 개간하였다고 합니다.
신안마을 입구의 마을회관 옆에 정자가 있습니다. 그 주위에 팽나무와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맨 왼쪽 나무는 팽나무이고, 그 외 나무는 회화나무입니다.
- 생림면 안양리 신안마을 팽나무, 회화나무
팽나무와 회화나무는 크기와 나이가 비슷합니다. 높이는 약 17m, 가슴높이 직경은 약 1~1.1m입니다. 수령은 약 300년입니다.
- 상동면 여차리 여차마을 팽나무
상동면(上東面) 북쪽 지역에 여차리(余次里)가 있습니다.
여차리는 생림면 사촌리(沙忖里)에서 구불구불한 고갯길인 '여덟막고개'를 넘어야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옛날 어떤 사람이 이장(移葬)하려고 명당을 여덟 번이나 찾은 끝에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여차마을의 끝에 나룻배가 닿는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양산 원동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 상동면 여차리 여차마을 팽나무
여차마을은 김해에서 보기 드문 곳입니다. 공장이 없는 깨끗한 청정지역입니다.
여차마을은 용성(龍城)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여차천 동쪽은 동용성(東龍城)이고, 서쪽은 서용성(西龍城)입니다. 무척산이 있는 동용성 길가에 팽나무 한 그루가 운치 있게 서 있습니다.
- 밑동과 부러진 가지
팽나무 옆에 최근에 부러졌는지 큰 가지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 상동면 여차리 여차마을 팽나무
이 나무는 여차마을의 당산나무입니다. 근래까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무 높이는 약 19m, 가슴높이 직경은 약 1.8m입니다. 수령은 약 400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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