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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등동 벅수
여수시로 진입하는 옛 도로의 북쪽에 동·서로 한 쌍의 돌장승이 있습니다. 연등동(蓮燈洞) 벅수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 수군이 주둔하였던 전라좌수영에는 동문, 남문, 서문의 성문이 있었고, 각 성문 접근로에 벅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벅수가 서 있던 자리가 지금의 덕충동, 봉산동, 연등동이라고 합니다.
벅수는 성문과 근접해 있지 않고 성문으로부터 약 5리 정도 떨어진 접근로에서 성문 수호와 읍락비보(邑落裨補: 마을의 약하거나 모자란 것을 도와서 채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연등동 벅수는 전라좌수영의 서문으로 통하는 곳에 있어 여수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 남자 벅수
동쪽 편의 남자 벅수입니다.
- 남자 벅수
전체 높이는 174cm, 머리 높이는 85cm, 둘레는 145cm입니다.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큰 편입니다.
- 얼굴
복두(幞頭) 모양의 관모(冠帽)에 위로 올라간 눈썹, 달걀형의 눈, 길고 큰 자루병 코를 하였습니다. 드문드문 이빨이 보이는 벌린 입과 양 갈래의 작고 뾰족한 턱수염을 하였습니다.
- 몸통
벅수의 몸통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남자 벅수 몸통에는 '남정중'(南正重)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여자 벅수 몸통에는 '화정려'(火正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남정중(南正重)과 화정려(火正黎), 두 글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요?
남정중(南正重)과 화정려(火正黎)의 어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 전욱 고양씨(顓頊 高陽氏) 시대에 전욱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확실하게 구별해 두고, 창궐하는 질병을 잡고자 힘이 장사인 중(重)과 려(黎)에게 관직을 맡겼습니다. 중(重)을 남정(南正)으로 명하여 하늘을 맡아 신을 다스리게 하고, 려(黎)를 화정(火正)으로 명하여 땅을 맡아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남정(南正)과 화정(火正)은 중국 상고(上古)의 관명(官名)이고, 중(重)과 려(黎)는 인명(人名)입니다. 즉 남정중(南正重)과 화정려(火正黎)는 남정(南正)과 화정(火正)이라는 관직을 중(重)과 려(黎)라는 인물이 맡았다는 뜻입니다. 특히 려(黎)에게는 땅을 다스리면서 각종 질병과 악귀를 쫓아내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각종 질병도 맥을 추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무속에 들어오면서 읍락비보(邑落裨補)적인 기능의 명문으로 표현되었습니다.
- 여자 벅수
서쪽 편의 여자 벅수입니다.
- 여자 벅수
전체 높이는 166cm, 머리 높이는 86cm, 둘레는 130cm입니다.
험상궂은 듯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 얼굴
사방관(四方冠) 모양의 관모에 올라간 눈썹, 왕방울 눈, 길고 복스러워 보이는 귀, 콧방울이 넓은 매부리코, 성긴 이빨이 보이는 벌린 입을 하였습니다.
- 몸통
몸통에 '화정려'(火正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여자 벅수
여자 벅수 뒷면에 '무신사월이십팔일 오시립화주주사 김승'(戊申四月二十八日 午時立化主主事 金昇)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성 연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신'(戊申)이란 기록으로 보아 1788년, 정조 12년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연등동 벅수는 내륙 지역과는 달리 해안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조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얼굴에서 코가 유난히 큰 것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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