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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역

 

해양도시 진해(鎭海)는 아름다운 풍광과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함께 지닌 곳입니다.

 

진해 지역의 원래 이름은 웅지현(熊只縣)이며, 그 중심지는 지금의 웅천(熊川) 지역입니다. 진해가 지금과 같이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입니다. 그래서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군항마을 근대역사 테마거리가 그런 곳입니다.

 

진해역에서 중원로터리를 지나 장옥거리까지 그 흔적을 찾아봅니다.

 

진해역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진해만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한 일제가 진해를 군항도시로 개발하며 진해항과 내륙 간 철도 연결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과 군수물자 운송을 담당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여객과 국방에 필요한 물품 운송을 담당하였습니다. 그 후 열차 이용객이 감소하면서 2015년에 여객 업무가 중단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지방 역사(驛舍) 모습이 잘 남아 있어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 일본식 근대 가옥

 

진해역에서 중원로터리 쪽으로 가는 도중에 일본식 근대 가옥이 있습니다.

 

건물은 2층 목조 기와집입니다. 1층은 상점이고, 2층은 주택입니다. 2층 외벽을 길쭉한 나무 판재로 층층이 가로로 덧대어 놓았습니다. 일본식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1층 외벽도 원래는 2층 외벽과 같은 형태였을 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개조되어 원형을 알 수 없습니다.

 

- 일본식 근대 상가 건물

 

일본식 근대 가옥이 있는 곳에서 한 블록 남쪽으로 내려온 후 오른쪽으로 가면 일본식 근대 상가 건물이 있습니다.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옛 흔적이 몇몇 곳에 남아 있습니다.

 

- 흑백

 

일본식 근대 상가 건물에서 왼쪽으로 중원로터리 쪽으로 가다 보면 로터리 조금 못 미쳐 문화공간 '흑백'이 있습니다.

 

- 흑백

 

'흑백'은 이름처럼 하얀색 벽과 검은색 창틀, 현관 문틀이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1층은 상점으로 사용되고, 2층은 전시회나 연주회 등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52년에 작곡가 이병걸이 '칼멘'이라는 상호로 이곳에서 고전음악다방을 시작하였습니다. 1955년에 유택렬 화백과 아내였던 고미술품 수집가 이경선이 인수하여 '흑백다방'으로 상호를 바꾸고 2008년까지 운영하였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음악 감상회와 미술 전시회 등을 개최하여 마땅한 문화공간이 없었던 진해에서 문화 중심지로 사랑받았습니다.

 

- 마크 사거리

 

중원로터리 서쪽 거리는 마크 사거리입니다. 

 

진해가 군항도시인만큼 군인들의 군복에 마크와 이름표를 달아주는 마크사들이 이곳에 한데 모여 있습니다.

 

- 육각정

 

중원로터리 남서쪽에 빨간 지붕을 얹은 3층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에는 육개장과 곱장전골을 잘한다고 알려진 '새 수양회관'이 있습니다.

 

건물은 1920년대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로써는 보기 드문 형태의 3층 목조건물입니다. 이런 육각 누각이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3채가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허물어지고 지금은 이 건물만 남았다고 합니다. 지붕이 뾰족해서 '뾰족집' 또는 '팔각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육각 누각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요정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 군항마을 공원

 

육각정 옆의 군항마을 공원입니다. 공원은 여좌천을 복개한 곳에 조성되었습니다.

 

- 육각정과 원해루

 

육각정 길 건너 맞은편에 '원해루'가 있습니다.

 

- 원해루

 

원해루(옛 영해루)는 6·25전쟁 당시 UN군 포로였던 중공군 출신 장철현이 1956년에 개업한 중국 음식점입니다. 당시 상호는 '영해루'였습니다.

 

이곳은 1950년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진해에 내려오면 종종 이 집에 들러 만두를 즐겨 먹던 곳이기도 하고,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다녀가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80년도 초반에 서울에서 '태화관'이란 중국집을 운영하던 화교 진검제가 인수하면서 상호도 영해루(榮海樓)에서 원해루(元海樓)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그의 후손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물 전면에 2개의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위쪽이 영해루 것이고, 아래쪽이 원해루 것입니다. 원해루로 운영되면서 '영해(榮海)'가 '원해(元海)'로 바뀌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옆 글자들과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탑산

 

진해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중원로터리는 일제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8갈래의 길이 욱일기(旭日旗) 형상으로 뻗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탑산입니다.

 

탑산 꼭대기에 진해탑이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 일제가 러일전쟁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승전기념탑이 있었으나 광복 이후 헐어내고 우리 해군을 상징하는 진해탑을 세웠습니다. 진해탑은 군함 마스트(선체 중심 선상의 갑판에 수직으로 세운 기둥)를 본떠서 만들어졌습니다.

 

- 진해우체국

 

중원로터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은 러시아풍 건물인 진해우체국입니다.

 

이 건물은 진해와 가까운 마산의 러시아영사관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고 합니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 진해우체국의 지붕과 난간에 있는 동판과 동재를 뜯어내 무기를 생산할 자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 진해우체국

 

건물은 1912년 10월 25일에 준공되어 그해 11월 15일에 진해우편국이 이전하였고, 2000년까지 우체국 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건물 정면 입구 양측에 투스칸 오더(Tuscan order) 양식의 기둥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정면 양 바깥쪽에 반원형의 지붕과 채광창을 두어 전체적인 조형미를 더하였습니다.

 

진해우체국과 같은 일제강점기 건축물을 보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건물 자체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일제의 잔재라는 데서 오는 아픔이 서로 교차합니다.

 

- 장옥거리

 

진해우체국에서 남동쪽으로 가면 장옥(長屋)거리가 있습니다.

 

- 장옥거리

 

일제는 러일전쟁 직후 진해를 군항도시로 건설할 때 중원로터리 주변 도로에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인 장옥(長屋)을 지었습니다.

 

장옥거리에는 각기 다른 장옥 6채가 다닥다닥 붙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장옥거리라는 이름도 이 건물들로 말미암아 붙여졌습니다.

 

- 계단

이곳 장옥 가운데 '황해당인판사'(黃海堂印版社)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있습니다. 빛바랜 간판만큼 오랜 세월 손도장을 만들어온 정기원 씨가 가게 주인입니다. 그곳 목조 계단입니다. 이 계단을 통해 건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 장옥

 

장옥(長屋)은 일본어로는 나가야(ながや)라고 합니다. 하나의 지붕을 두고 길게 지어진 목조 연립주택입니다. 1층은 상점, 2층은 주거 용도로 지어진 복층 구조의 주상복합건물입니다.

 

- 장옥거리

 

장옥거리와 길 맞은편의 현대적인 상가 거리와 비교해보면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선학곰탕

 

장옥거리 안쪽에 '선학곰탕'이라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평일 점심때만 영업하는 진해의 맛집인데, 지금은 휴업 중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건물은 일제강점기 진해만 요항 사령부인 진해요항부(鎭海要港府)의 병원장 관사입니다. 문서상으로는 1938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100년이 훨씬 지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는 'ㄱ'자형의 목조 가옥입니다. 현관은 일본식 가옥의 특징인 돌출형으로 되어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 공간은 서양식으로, 가족들이 거주하는 주거 공간은 전통 일본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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