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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함안 주세붕 묘역

sky_lover_ 2022. 4. 26. 07:17

- 주세붕 묘역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溪內里)는 낙동강(洛東江)의 연안으로, 강 건너 창녕군 남지읍에 비해 평지가 넓지 않습니다. 이것은 창녕군 남지읍은 낙동강이 휘어져 돌아가는 흐름의 안쪽이라 퇴적의 영향이 강하여 하천의 토사가 많이 퇴적되었지만, 계내리 일대는 낙동강 흐름의 바깥쪽이라 퇴적보다는 침식의 영향이 조금 더 강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들판이 적고 낮은 구릉이 형성되어 있으며, 낙동강과 그 지류 하천인 광려천(匡廬川) 사이 경사가 완만한 곳에 칠서 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 북쪽 끝에 주세붕 묘역이 있습니다. 나지막한 야산의 양지바른 곳에 3기의 무덤이 있습니다.

 

- 주세붕 묘역

 

제일 위의 무덤이 아버지 주문보(周文俌), 중간이 주세붕(周世鵬), 제일 아래가 큰조카 주조(周造)의 무덤입니다. 주조의 무덤은 별다른 장식이 없이 평범합니다.

 

- 주세붕 묘

 

주세붕의 무덤입니다.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은 조선 중기 대학자이며 문신입니다.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 본관은 상주(尙州)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에 독실하였습니다. 중종 17년(1522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뒤 승문원 정자로 사가독서에 뽑히고, 홍문관의 정자, 수찬을 역임하였으며, 공조 좌랑, 병조 좌랑, 강원도 도사를 거쳐 사간원 헌납을 지냈습니다.

 

중종 36년(1541년)에 풍기 군수에 부임하여 풍기 지방의 교화를 위하여 향교를 이전하고, 사림 및 그들의 자제를 위한 교육 기관으로 1543년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세워 중국의 서원과 같이 사묘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을 지닌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습니다.

 

그 후 직제학, 승정원 도승지, 성균관 대사성, 호조 참판을 지냈습니다. 죽은 뒤 소원에 따라 고향인 칠원 선영에 안장되었습니다. 후사가 없어 형의 아들인 주박(周博)을 사자(嗣子)로 삼았습니다.

 

- 망주석

 

무덤 좌우에 망주석이 있습니다. 망주석은 연꽃 모양 덮개돌을 한 기다란 사각형입니다. 망주석에는 특이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수무부모'(誰無父母), 즉 '부모 없는 자식이 누구이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 망주석

 

다른 하나는 '숙비인자'(孰非人子), 즉 '사람의 자식이 아닌 자가 누구인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글귀는 부모를 가진 인간이라면 어찌 감히 이 무덤을 훼손할 수 있겠는가?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신도비

 

무덤 측면의 비석은 신도비입니다.

 

덮개돌은 연꽃 모양이며, 몸돌에 글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습니다. 사각형 받침돌에 연화문과 안상무늬가 있습니다.

 

- 묘비(앞면)

 

묘비 형태는 신도비와 거의 같습니다. 몸돌 앞면이 글자가 마모되고 이끼가 끼어 있어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돌의 앞면 글자는 '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 '춘추관성균관사주공휘세붕지묘'(春秋館成均館事周公諱世鵬之墓)입니다.

 

주세붕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무덤의 망주석, 신도비, 묘비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이 장식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묘비(뒷면)

 

비신 뒷면의 글자는 비교적 선명합니다.

 

'황명만력십삼년을유춘건'(皇明萬曆十三年乙酉春建)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선조 18년(1585년) 봄에 묘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사후 31년이 지나 세워졌습니다.

 

- 주세붕 묘와 주문보 묘

 

주세붕 묘 뒤쪽에 아버지 주문보 묘가 있습니다.

 

- 주문보 묘(앞면)

 

주문보 묘는 네모난 형태로, 아버지 주문보와 어머니 창원 황씨를 합장하였습니다. 가로세로 약 6~7m 정도로 매우 크게 조성되었습니다.

 

- 둘레돌

 

주문보 묘에는 특이하게 사각형 둘레돌에 주문보에 대한 기록이 가득 새겨져 있습니다. 아들 주세붕이 찬(撰)한 것으로 나옵니다.

 

위 사진에서 '명조선국정부인창원황씨묘'(明朝鮮國貞夫人昌原黃氏墓)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 주문보 묘(뒷면)

 

예전에 한적한 농촌 지역이었던 이 일대는 지금 삭막한 공장지대로 변했습니다. 묘역으로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주세붕 묘역이 있는 야산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山' 자 모양입니다. 묘역 양옆으로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가 있고, 앞쪽으로 천(川) 대신에 자그마한 연못과 그리고 안산(案山)이 있습니다. 묘역의 좌향(坐向)이 이곳 낙동강 물줄기 방향과 같은 동향(東向)이라 남쪽 공장지대와 마주 보는 것을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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