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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영천 유후재와 옥비

sky_lover_ 2021. 9. 13. 11:55

- 유후재

 

경북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 대재못 옆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 못 뒤쪽에 재실인 유후재(遺厚齋)와 그리고 옥비(玉碑)가 있고, 그 뒤로는 창녕 조씨 문중 묘역이 있습니다.

 

유후재(遺厚齋)는 조선 시대 문신 조치우(曺致虞)를 기려 중종 34년(1539년)에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옥비는 중종 24년(1529년) 조치우 사후에 중종이 내린 옥(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각은 철종 5년(1854년)에 세워졌고, 최근에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유후재

 

유후재는 해발 127m의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있으며, 재실, 문간채, 비각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치우(曺致虞, 1459~1529)는 조선 성종 때의 문신입니다. 그는 성종 25년(1494년) 별사문과에 급제해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성균관 전적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중종반정 이후 장령을 지내고 대구 부사를 역임하면서 어진 다스림을 펼쳐 칭송을 받았습니다. 사옹원정(司饔院正)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거절했는데 어머니의 상중에 그도 생을 마쳤습니다.

 

- 유후재

 

유후재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집입니다.

 

가운데에 2칸 대청을 두고, 왼쪽에 온돌방인 2칸 충효당(忠孝堂)과 오른쪽에 온돌방인 1칸 입교당(立敎堂)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건물입니다. 앞쪽으로는 반 칸의 퇴를 두었습니다.

 

- 현판

 

건물 앞면에 '유후재'(遺厚齋)라 쓴 현판을 걸려 있습니다.

 

- 현판

 

대청 뒷면 위쪽의 왼쪽에 '송청서당'(松靑書堂)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송청서당은 (조치우의 묘가 있는) 창녕 조씨 문중 묘역이 있는 산인 송청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왼쪽 방 창방(昌枋) 간에 '충효당'(忠孝堂)이라는 쓴 현판과...

 

- 유후재

 

오른쪽 방 앞면 위쪽에 '입교당'(立敎堂)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비각

 

비각은 단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입니다.

 

- 비각

 

비각의 앞면 위쪽에 '내사옥비각'(內賜玉碑閣)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각 내부에는 옥으로 만든 비가 있습니다. 이 옥비는 영천 지역에서는 유일한 옥으로 만든 비석입니다.

 

- 귀부

 

비의 귀부는 간략하게 만들어졌으며, 그 형태가 해학적입니다.

 

- 이수

 

이수는 비신과 일체형으로, 꽃봉오리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 비신

 

비명은 비의 앞면에만 새겨져 있습니다. '어사청백리조치우옥비'(御賜淸白吏曺致虞玉碑)라고 세로로 새겨져 있고, 나머지 면은 빈 채로 두었습니다.

 

조치우가 죽은 후 조정에서 옥비 2기를 하사하여 그의 청렴결백과 효행의 덕을 표창하였고, 청백리로 녹선(錄選)하였습니다. 하사한 옥비 가운데 1기는 유후재 비각 내의 옥비이고, 또 하나의 다른 옥비 1기는 경남 창원 북면 지개리에 있는 창녕 조씨 재실인 추감재(追感齋)에 있는 조치우 부인에게 내려진 옥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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