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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학동마을 돌담길

담길이 아름다운 곳, 성 학동마을을 찾았습니다.

학동마을은 납작한 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돌담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한때는 이런 돌담길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았지만, 편리함만을 좇는 세태에 밀려 이제는 보기 드물어졌습니다.

- 학동마을 돌담길

학동마을을 찾은 날, 아직 겨울 추위가 여전하고,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이곳 또한 적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봄날 꽃들이 피어날 때쯤이 되면, 이곳 골목길도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를 띨 것입니다.

- 학동마을의 서비정

이곳은 돌담길만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나라를 아끼는 마음 또한 각별했던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동
마을을 휘감아 도는 학림천을 건너서 마을 맨 뒤 높은 곳에 서비정(西扉亭)이 있습니다. 이 정자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을 한탄했던 한 우국지사의 넋이 서린 곳입니다. 이런 사실을 말해주려는 듯 정자 앞에는 기품 넘치는 소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서 있습니다.

- 서비정

서비정은 최우순(崔宇淳, 1832~1911)의 애국심을 기려 세운 정자입니다.

최우순조선 말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집 동쪽에 일본이 있다고 해서 사립문을 서쪽으로 돌리고, 아호(雅號)를 청사(晴沙)에서 서비(西扉)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국권 회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경술국치를 강행하여 나라를 빼앗은 일본은 전국의 명망 높은 유림에게 일왕의 은사금을 주어 회유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그에게도 은사금을 받으라고 여러 차례 강요하였지만,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완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헌병을 파견하여 연행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독약을 먹고 순절하였습니다. 1911년 3월 19일 향년 80세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러한 순절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의 유림과 지사들이 뜻을 모아 그의 우국충절을 기려 서비정을 세우고, 해마다 향사를 모셨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1975년에 전면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 서비정

서비정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이만하면 비교적 관리는 잘되고 있는 듯했습니다. 기와지붕도 무너진 데가 없고, 문짝과 문풍지도 제대로 다 있으니 말입니다.

- 서비정

정겨운 돌담길로 사랑받는 곳, 학동마을.

돌담길이 소문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도 많이 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돌담길만 쓱 둘러보고 갈 것이 아니라, 서비정에도 들러 나라를 아꼈던 옛 선비의 절개를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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