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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사터 서쪽 절터

룡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어 한때 신라 최대의 절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말 몽고군의 침입 때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넓은 터에 몇몇 초석만이 남았습니다.

이런 황룡사터 서쪽에 그 크기는 황룡사에 훨씬 못 미치지만, 절터 하나가 있습니다.

이 절터는 얼핏 보면 황룡사에 딸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절의 배치는 황룡사와는 달리 쌍탑일금당식(雙塔一金堂式)으로 되어 있습니다. 쌍탑 가운데 서탑은 1층 지붕돌 하나만 남았고, 동탑은 1층 몸돌과 1층 지붕돌이 남았습니다.

- 황룡사터 서쪽 절터의 동탑

오십보백보겠지만 쌍탑 가운데 동탑이 조금 더 나은 편입니다. 1층 몸돌 외에도 1층 지붕돌과 하층기단 일부가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이 탑은 남아있는 탑재가 얼마 되지 않아 자세한 모양은 알 수 없지만, 2층 기단에 3층 석탑 형식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1층 몸돌에 사천왕상이 세련된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혹시 상층기단 면석에도 팔부신중상과 같은 것이 새겨져 있지는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들 쌍탑은 쌍둥이처럼 서로 닮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크기는 크지는 않아도 아름다운 탑이었을 것입니다.

- 동탑의 광목천왕상(왼쪽)과 증장천왕상(오른쪽)

통일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사천왕상이 새겨진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그 방향에 따라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사천왕은 각각 자신을 나타내는 물건을 지니고 있는데, 이 물건이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통일신라시대 말과 고려시대 초에는 광목천왕은 칼이나 금강저를, 장천왕은 칼이나 금강저 또는 보주를, 지국천왕은 칼이나 창을, 다문천왕은 보탑이나 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동탑 1층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을 살펴볼까요?

이들 사천왕상은 모두 갑옷을 입은 채 두 발로
악귀를 밟고 있습니다. 사천왕상의 지물(持物)을 보면, 먼저 서쪽 면에 있는 광목천왕상은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쪽 면에 있는 증장천왕상은 오른손에 금강저를 들고 있습니다.

- 동탑의 지국천왕상(왼쪽)과 다문천왕상(오른쪽)

동쪽 면에 있는 지국천왕상과 북쪽 면에 있는 다문천왕상은 다른 사천왕상보다 마모가 심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인 형태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지국천왕상은 양손으로 창(?)을 쥐고 있고, 다문천왕상은 왼손에 보탑을 들고 있습니다.

- 동탑의 증장천왕

이들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증장천왕상입니다. 이 사천왕상은 서 있는 자세도 다른 사천왕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악귀를 밟고 있는 오른쪽 다리 무릎을 약간 굽혔습니다.

- 증장천왕의 세부

그런데 증장천왕 발밑에 깔린 악귀의 표정이 기가 막힙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몰라도 빙긋이 웃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만일 웃고 있는 것이 맞는다면, 이것을 새긴 석공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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