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표충비각 밀양 표충사(表忠寺)와 정반대 편에 해당하는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땀 흘리는 비(汗碑)'로 유명한 표충비(表忠碑)가 있습니다. 표충비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병을 크게 무찔렀고, 일본에 전쟁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삼천여 명을 환국시킨 사명대사(泗溟大師)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영조 18년(1742년)에 세워졌습니다. 흔히 '사명대사비'라고도 합니다. 표충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석 면에 땀방울이 맺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밀양 시민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 때문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합니다. - 무안리 향나무 표충비 앞쪽에 향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무안리 향나무입니다. - 무안리 향나무 무안리 ..

- 관가정 경주 양동마을 고택은 관념적인 당호(堂號)가 많은 다른 지역 고택과는 달리 당호가 전원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큰 향나무가 있으면 향단(香檀), 소나무가 있으면 송첨(松簷) 등으로 말입니다. 관가정(觀稼亭)도 예외가 아닙니다. 관가정은 '농사짓는 풍경을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관가정은 양동마을 초입의 전망 좋은 서향받이 언덕 위에 있습니다. 양동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물(勿)' 자 형국의 명당 터인데, 그 첫 번째 획이 뻗어 내려오는 지점에 관가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건물 배치도 관가정 건물 배치도입니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ㅁ'자 형 좌·우측에 날개를 단 형태로 되어 있고, 그 뒤편 동북쪽에 별도로 일곽을 이룬 사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송첨종택 경주 양동(良洞)마을은 세조 3년(1457년)에 청송에 살던 손소(孫昭)가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마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손소의 장인 풍덕 류씨(豊德柳氏) 류복하(柳復河)는 여말선초의 만호(萬戶)로 일대의 수많은 노비와 토지를 소유한 토호(土豪)였습니다. 양동마을 북쪽 언덕에 송첨종택(松簷宗宅)이 있습니다. 송첨종택은 경주 손씨(慶州孫氏)의 큰 종가로, 양동마을에서 시조가 된 손소가 지은 집입니다. 이곳에서 손소의 아들 손중돈(孫仲暾)과 외손 이언적(李彦迪)이 태어났습니다. - 손소 초상화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는 평범한 지방 재산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 관직에 나갔고, 세..

- 분옥정 경북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치동(致洞) 마을 안쪽의 계곡에 멋진 정자가 있습니다. 분옥정(噴玉亭)입니다. 용계정사(龍溪精舍)라고도 합니다. 분옥정은 숙종 때 유학자인 돈옹(遯翁) 김계영(金啓榮, 1660~1729)을 기리기 위해 순조 20년(1820년)에 후손 김종한을 중심으로 한 경주김씨 문중에서 세운 정자입니다. '분옥정(噴玉亭)'이란 정자 이름은 작은 폭포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의 모습이 옥구슬을 뿜어내는 듯하다 하여 붙여졌습니다. 분옥정이 있는 치동 마을은 일암(逸庵) 김언헌(金彦憲, 1609~1682)이 병자호란이 일어난 인조 14년(1636년)에 이곳에 터전을 잡으면서 생긴 경주김씨의 집성촌입니다. 당시 일암 김언헌은 직접 주위 나무를 벌채하여 마을의 터전을 닦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 장산서원 옛터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守城里)는 임고면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오지입니다. 이곳은 북쪽에 운주산(雲柱山)이 있고, 동쪽에 봉좌산(鳳座山)이 있으며, 남쪽에 천장산(天掌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고천(臨皐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내려갑니다. 운주산 산세가 험해 임진왜란 때 왜적의 방어에 유리하여 김백암(金柏岩) 장군이 병사들을 인솔하여 성을 쌓고 진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수성(守城)'이라는 지명은 산성을 쌓고 왜적을 방어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마을은 구마이(구만), 장산, 원터골(원터, 원기), 배태(배이터, 배이태, 배기리), 실리(새마, 새각단, 신리), 주마각단(중리), 영지이(영정, 영전), 터골(터꼴, 기곡) 등이 있습니다. 기곡(基谷)은 수성리에서 가장 처음 생긴 마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