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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산서원 옛터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守城里)는 임고면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오지입니다. 이곳은 북쪽에 운주산(雲柱山)이 있고, 동쪽에 봉좌산(鳳座山)이 있으며, 남쪽에 천장산(天掌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고천(臨皐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내려갑니다.

 

운주산 산세가 험해 임진왜란 때 왜적의 방어에 유리하여 김백암(金柏岩) 장군이 병사들을 인솔하여 성을 쌓고 진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수성(守城)'이라는 지명은 산성을 쌓고 왜적을 방어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마을은 구마이(구만), 장산, 원터골(원터, 원기), 배태(배이터, 배이태, 배기리), 실리(새마, 새각단, 신리), 주마각단(중리), 영지이(영정, 영전), 터골(터꼴, 기곡) 등이 있습니다.

기곡(基谷)은 수성리에서 가장 처음 생긴 마을이고, 원터(院基)는 예전에 원이 있었던 곳이며, 배태(裵李基)는 곡강 배씨와 월성 이씨가 마을을 형성한 곳입니다. 신리(新里)는 90여 년 전에 새로 생긴 마을로, 경주 이씨가 주로 살고 있습니다.

 

수성리 장산 마을 안쪽에 장산서원(章山書院) 옛터가 있습니다.

 

- 장산서원 옛터

 

장산서원은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 1516~1568)을 추모하여 세운 서원입니다.

 

장산서원은 정조 4년(1780년)에 세워졌고,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그 후 2006년에 후손들에 의해 장소를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로 옮겨 복원되었습니다.

 

- 장산서원 유허비

 

잠계 이전인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평생 혼신을 다해 부친을 모셨습니다. "잠계가 없으면 회재가 없었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일생은 오직 부친 봉양이었습니다.

부친이 살아있을 때는 그는 언제나 옆에서 봉양하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인 명종 21년(1566년)에 부친이 생전에 써놓은 진수팔조(進修八條: 임금 학문에 필요한 여덟 가지 조목)의 상소를 올렸습니다. 수성리 영전 마을에의 묘와 재사 영전재(苓田齋)가 있습니다.

- 장산서원 옛터

 

잠계 이전인은 천성이 온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10세 때부터 부친에게 강학 수업을 받았으며, 21세 때 서천잠(誓天箴)을 지어 "차라리 성인을 배워 미치지 못함이 있더라도 한 가지 기예(技藝)나 선(善)으로 이름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라"며 진실한 학문에 전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명종 2년(1547년)에 회재 이언적이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평안도 강계로 유배를 갈 때 따라가서 7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유배지에서 별세했을 때는 홀로 수천 리 길의 고향인 경주까지 유해를 운구해 장례를 치렀습니다. 시묘살이 3년 후에는 회재 이언적의 뛰어난 학행을 세상에 널리 알려 훗날 영의정에 추증되어 명종 때 문묘에 배향되고 동방오현(東方五賢)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잠계공(潛溪公)은 모습과 언행이 부친과 흡사하고 출중하다"고 평하며, '잠계(潛溪)'라는 호를 지어 주었습니다. 잠계는 독락당 북쪽 상류의 계곡(현재 장산서원 위쪽)을 말합니다.

잠계 이전인은 그의 아들 구암(求菴) 이준(李浚, 1540~1623)과 치암(癡菴) 이순(李淳, 1544~1580)의 도움으로 시서 등 많은 글을 <잠계집(潛溪集)>에 남겼습니다. 사후에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추증되었고, 장산서원(章山書院)에서 배향되었습니다.

 

- 수성리 은행나무

 

장산서원(章山書院) 옛터에 노거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수성리 은행나무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1780년 장산서원이 세워질 때 심은 기념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회재 이언적이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수성리 은행나무

 

수성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있습니다.

 

수성리 은행나무

 

여강이씨(驪江李氏) 옥산파(玉山派) 문중 후손들은 매해 칠월칠석날이 되면 이곳 은행나무와 향나무를 찾아와 주변 잡초를 제거하고 문중 후손들의 번영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이곳 마을 주민들도 이 나무들을 소중히 여기며 주변을 깨끗이 하고 마을의 번영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수성리 은행나무

 

수령: 470년.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4.1m.
소재지: 경북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851.

 

수성리 향나무

 

수성리 은행나무와 가까운 곳에 노거수 향나무가 있습니다. 수성리 향나무입니다.

 

- 수성리 향나무

 

향나무는 한자로 향송(香松), 향목(香木), 또는 홀목(笏木)이라고도 합니다.

 

홀목의 홀(笏)은 대신들이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쥐는 명패를 말합니다. 이 명패를 만들 때 1~4품까지는 상아로 만들었으나 5~9품까지는 향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수성리 향나무

 

향나무는 예로부터 청정한 이미지와 더불어 줄기와 잎에서 독특한 향기가 싱그럽게 나서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궁궐이나 절, 또는 우물가나 무덤 주변에 많이 심었습니다.

 

그리고 제례와 법회 등과 같은 경건하고 엄숙한 의식에서는 언제든지 향을 피웠습니다. 향나무는 신을 부르는 영험함이 있어 이러한 향의 재료로 쓰였습니다.

 

수성리 향나무

 

수성리 향나무는 하늘을 향해 똑바로 자랐습니다. 향나무치고는 키가 몹시 큽니다.

 

수령: 470년.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2.7m.
소재지: 경북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851.

 

(202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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