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정 마을 의령군 대의면(大義面) 면 소재지에서 십오 리쯤 되는 모의골(모의곡(慕義谷))에 행정리(杏亭里)가 있습니다. 행정리는 은행정이, 행자촌, 행자동, 행촌, 모오행정(모의행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마을은 행정(杏亭), 암하(巖下) 마을이 있습니다. 행정리(杏亭里)에 거대한 은행나무 세 그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살구나무 혹은 은행나무를 가리키는 '행(杏)'자와 정자 '정(亭)'자를 쓰는 행정(杏亭)의 유래는 거대한 은행나무 세 그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의령의 다른 지역에도 '행정'이란 마을이 있으므로 부를 때는 보통 '모오행정(모의행정)'이라 합니다. 행정 마을의 유래는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행정(杏亭)이라 불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

- 원동서당 창녕 원촌리(元村里)는 고암면(高岩面)의 서부 지역에 있습니다. 억만리(億萬里)와 경계를 이루는 토평천(土坪川)이 구불구불 돌아가며 흐른다고 하여 원촌(圓村), 돌방 등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둥글 '원(圓)'이 으뜸 '원(元)'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원촌리에는 원촌, 매산, 광산, 서암, 어은 등의 마을이 있습니다. 원촌(元村) 마을은 예전에는 돌방, 돌방고개로 불리었으며, 경주 이씨와 창녕 조씨가 살아왔습니다. 돌방은 도르방, 둥글다는 이곳 토박이말입니다. 원촌 마을 동쪽 불탕골에 원동서당(圓東書堂)이 있습니다. 원동서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강학소로 전해옵니다. 원동서당이 있는 이곳은 원촌 마을의 옛터라고 합니다. 이곳에..

- 구량리 은행나무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에 구량리(九良里)가 있습니다. 이곳은 본래 삼한시대 구리벌이라는 성읍국가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 후 구량벌(九良伐) 또는 구량화촌(九良火村)이라 하였습니다. 구량리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 때 붙여졌습니다. 이곳 마을은 송정(松亭)과 중리(中里) 마을이 있습니다. 중리는 남중리(南中里)라고도 합니다. 이곳 마을 들판에 노거수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구량리 은행나무입니다. 어른쟁이 또는 언응쟁이라고도 하는 이 은행나무 아래에 재우(齋宇)인 이리재(二履齋)가 있었다고 합니다. - 구량리 은행나무 구량리 은행나무는 2003년 태풍 매미로 수관(樹冠)의 1/3 정도가 훼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나무의 전체적인 형태가 다소 손상되었습니다. 주..

- 가덕진성 터의 성벽 부산시 강서구 성북동(城北洞)은 가덕도의 북쪽 지역에 있습니다. 이곳은 가덕진성(加德鎭城) 북문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성북(城北)'이란 지명이 붙었습니다. 성 안쪽에 있어 성안 마을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자연 마을로는 선창(船艙), 성북(城北), 율리(栗里), 장항(長項)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 성북 마을에 조선시대 가덕진성 터가 있습니다. 지금도 가덕진성의 허물어진 성벽 일부가 이곳 덕문중학교 남쪽에 남아 있습니다. - 가덕진성 터의 성벽 가덕진성은 중종 39년(1544년)에 통영 사량진(蛇梁鎭)에 왜구들이 침입하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가덕진(加德鎭)을 설치하고, 성을 쌓아 수군첨절제사가 주둔하면서 가덕도 전체를 지키고 다스렸던 곳입니다. 가덕진성은 1592년 임진왜란으..

- 노당리 은행나무 경주시 안강읍 노당리(老堂里)는 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신라시대부터 안강(安康)에서 의창군(義昌郡: 신라 삽량주(歃良州) 또는 양주(良州)의 행정구역)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신라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오래된 가옥이 많았습니다. 이곳은 마을 서쪽에 노당지(老堂池)가 있고, 동쪽에 노당들, 뒷들, 배알이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마을로는 노당1리, 노당2리가 있습니다. 노당1리에는 사릿골, 노당, 점골, 거리마을이 있고, 노당2리에는 풀못안, 대밭골, 남산이 있습니다. 노당1리는 본래 사릿골로 더 알려진 마을입니다. 500여 년 전에 이 마을을 일으킨 경주 사람 김처형(金處衡)의 성씨 '金'은 모래(沙)와 서로 잘 어울린다고 뜻에서 '사릿골', 사동(沙洞)이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