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법사터 삼층석탑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흥법사터가 있습니다. 흥법사는 통일신라 말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번창하다 임진왜란 무렵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입니다. 지금은 이곳 절터에는 석탑과 부도비만 남아 있을 뿐 주위가 다 논밭으로 변했습니다. 이들 논밭 가운데에 있는 탑 주위는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시대에 만든 탑입니다. - 하층기단부의 안상무늬 지대석 위에는 하대석과 그 위의 면석을 한 돌로 만든 하층기단이 있습니다. 면석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이나 가운데기둥이 없이 3구씩의 안상(眼象)무늬를 새겼습니다. 안상무늬 안에는 땅에서 솟은 꽃 모양의 무늬를 또 새겼습니다. 이러한 것은 고려시대에서..
-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나긋나긋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가면 단양 가곡면 강가에 향산리 마을이 있습니다. '향산리(香山里)'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주변이 아름다운 조그마한 마을 한가운데에 석탑 하나가 서 있습니다.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입니다. 이 탑은 높이가 4.05m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꾼 후 향산사를 세웠고, 그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는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절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고, 절터에는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에 있었던 절에 대한 기록 또한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탑만은 처음 세워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 향산리 삼층석탑 ..
- 양양 선림원터선림원터는 미천골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산골짜기 좁은 길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선림원(禪林院)이라는 이름으로 깊디깊은 산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스님들의 수도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선림원은 신라 애장왕 5년(804년) 순응법사(順應法師)가 세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1948년에 이곳에서 출토되어 월정사에 보관하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범종에 804년 순응법사가 제작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인사를 세운 스님이 바로 순응법사이니 창건 당시 선림원은 화엄종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9세기 중엽 홍각선사(弘覺禪師)가 대대적으로 중수하면서 선종사찰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절터에 남아 있는 부도비, 부도, 석등, 삼층석탑들은 모두 9세기 후..
- 경주 남산 전망대에서 내려가며 바라본 늠비봉 오층석탑 경주 남산 전망대에서 부엉골(富興谷)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경주 시내를 배경으로 하여 능선에 우뚝 솟은 탑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늠비봉 오층석탑이라고 부르는 탑입니다. 이 탑이 있는 곳은 포석계 포석곡 제6사지(작은 늠비절터)로 알려진 곳입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부흥사(富興寺)의 원래 절터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 남산 늠비봉 오층석탑탑이 서 있는 곳은 작은 늠비봉 정상부의 넓은 바위가 돌출된 곳입니다. 2002년 2월에 지금처럼 탑을 다시 세우기 전에는 이곳에 기단 일부가 남아 있었고, 기단 주위로 상륜부를 제외한 일부 탑재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면석 일부와 몸돌받침, 그리고 몸돌로 추정되는 긴 네모꼴의 석재가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북쪽..
- 남산 국사골 제4사지 삼층석탑 국사골(國師谷)은 동남산에서 세 번째로 큰 골짜기로, 그 길이가 1.2km쯤 되는 비교적 긴 골짜기입니다. 이곳에는 여러 절터와 함께 고깔바위, 남산 부석, 상사암 등의 바위들이 있습니다. 국사골에 관한 기록은 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사(實際寺)의 스님 영여(迎如)는 그 씨족은 알 수 없으나, 덕과 행실이 모두 높았다. 경덕왕(景德王)은 맞이하여 공양하고자 사신을 보내어 그를 불렀다. 영여가 대궐에 가서 의식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니, 왕은 사신을 보내어 절까지 전송하게 하였다. 영여는 절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숨어버려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사신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알리니, 왕이 그것을 이상하게 여겨 국사로 추봉(追封)하였다. 그 이후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