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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양화리 법천사지 부도군


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 고성 양화리에 있는 법천사지 부도군을 찾았습니다.


법천사지(法泉寺址)는 천왕산 동남쪽 구릉에 있습니다. 절터는 양화경로당에서 서쪽으로 약 650m 떨어져 있으며, 지금 밭으로 변했습니다. 이 부근 골짜기 이름이 나무암골, 진성암골, 운봉암골, 생언암골 등 암자의 이름을 딴 것이 많은 것으로 보아 전성기 법천사는 여러 부속 암자를 거느린 대가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법천사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중신종(中神宗)에 소속된 절로 자복사(資福寺)에 지정된 것으로 보아 당시 지역 내에서 이름난 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광여도(廣輿圖)>에 표기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절이 지속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양화리 마을


법천사지 부도군이 있는 이곳 양화리(楊化里)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1972년에 마을 입구에 양화저수지가 생기면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옛날 이곳에 법천사가 있었던 연유로 마을 이름을 '법천'으로 불러오다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마을 앞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우거져 있다 하여 버들 '양()'자를 붙여 양화리라 하였습니다.

- 양화경로당 옆 느티나무


이곳에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가 눈에 띕니다. 양화경로당 옆에 있는 정자나무입니다. 수령이 200년 이상 됨직한 느티나무 3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 법천사지 부도군


양화리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끝에 법천사지 부도군이 있습니다. 이곳에 모두 8기의 부도가 있는데, 법천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법천사지 부도군에 있는 부도들입니다.


- 환야당 부도


환야당 부도는 연봉형 보주가 있는 석종형 몸돌과 판석형 기단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에는 '환야당(幼夜堂)'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영월당 조웅대사탑


영월당 조웅대사탑은 지대석 위에 2단의 원형 연화 기단석과 연봉형 보주가 있는 석종형 몸돌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에는 '영월당 조웅대사탑(影月堂 祖雄大師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단석은 앙련문이 있는 상부와 복련문이 있는 하부로 되어 있습니다.


- 해묵당 부도


해묵당 부도는 연봉형 보주가 있는 석종형 몸돌과 판석형 기단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에는 별도의 명문이 없으나, 기단석 윗면에 '해묵당(亥默堂)'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무명 부도 1


무명 부도 1은 방형 지붕돌과 팔각 몸돌로 되어 있습니다. 지붕돌에는 내림마루가 표현되었고, 몸돌은 방형 석재를 모죽임하여 팔각 형태로 하였습니다. 별도의 명문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 정파당 부도


정파당 부도는 연봉형 보주가 있는 종형 몸돌과 원형 연화 기단석, 그리고 지대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형의 기단석은 단판단엽 앙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조사 자료에 의하면 몸돌에 '정파당(情波堂)'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지대석 윗면에 '강희경자춘(康熙更子春)'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어 172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무명 부도 2


무명 부도 2는 종형 몸돌과 단판단엽 앙련문이 있는 팔각 기단석, 그리고 지대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옆에 원래 이 부도의 것으로 보이는 깨어진 지붕돌이 있습니다. 기단석 윗면에 '옹정삼년을사정월일입(擁正三年乙巳正月日立)'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어 1725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계봉화상 부도


계봉화상 부도는 연봉형 보주가 있는 종형 몸돌과 판석형 기단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도는 원래 탑비석과 함께 있었으나, 탑비석은 고성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탑비석 비 머리에 '계봉화상비음기(鷄峯和尙碑陰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비의 내용에 따르면, 계봉화상(1707~1787년)은 거제에서 태어나 고성 법성정사에서 입적하였으며, 부도는 정조 13년(1789년)에 세워졌고, 비는 순조 3년(1803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 담연당대사해담탑


담연당대사해담탑은 상륜부, 방형 지붕돌과 팔각 몸돌, 그리고 방형 기단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에 '담연당대사해담탑(湛然堂大師海湛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법천사지 부도군


법천사가 흔적도 없고 자료도 내려오지 않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옵니다.

법천사는 엄청난 신도들이 있어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돈을 벌면 주변의 땅을 사서 절의 규모는 점점 커졌습니다. 그런데 법천사 스님은 혼자 배를 불리며 호의호식을 하며 지내오던 차에 동학혁명 때 법천사를 불태웠던 머슴들이
땅을 한 평씩 한 평씩 가져가면서 입을 다물 쉬쉬했다고 합니다. 그 후 법천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 법천사지 부도군


이곳에 서서 앞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에서부터 양화저수지, 마을 집들과 구불구불한 좁은 길,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보입니다. 앞 펜스에는 옥수수 대가 줄지어 서 있고, 이곳 빈터에는 갓 딴 옥수수가 펼쳐져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볕이 내리쬡니다. 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가 조금씩 단단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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