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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입구 포스터
설 연휴 마지막 날에 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고훈문화'를 봤습니다.
'고훈'은 고분(古墳)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이 전시회는 일본 고훈시대(古墳時代)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시물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 하늘에서 본 하시하카 무덤(사진 출처:<일본의 고훈문화> 도록)
하시하카 무덤입니다.
이 고분은 나라 분지 동남부의 사쿠라이시 하시나카에 있습니다. 다른 일본 고분처럼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입니다. 이 고분은 일본의 대형 전방후원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3세기 중엽~후엽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방후원분은 3단 분구(墳丘)와 방패형 주호(周濠)를 갖춘 것이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다음은 이번 전시물 가운데 일부입니다.
- 석제합, 4세기 말, 시마노야마 무덤 출토(사진 출처:<일본의 고훈문화> 도록)
시마노야마 무덤에서 출토된 석제합입니다.
시마노야마 무덤은 나라 분지의 중앙부에 있는 나라현 시키군 가와니시초에 있는 전방후원분입니다. 2006년에 전방부의 부장시설을 발굴하였을 때 관 안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석제합은 모두 벽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색깔은 서로 다릅니다. 형태는 반구형의 뚜껑과 4개의 다리가 달린 몸체로 되어 있으며, 하단에 빗살 모양의 돌대가 있습니다.
- 토제 베개, 5세기 전반, 고조네코즈카 무덤(사진 출처:<일본의 고훈문화> 도록)
고조네코즈카 무덤의 토제 베개입니다.
고조네코즈카 무덤은 나라현 서남부에 있는 고조시에 있습니다. 1958년에 발굴조사에서 금동장식 투구를 비롯하여 다수의 무기와 무구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토제 베개는 석곽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말 하니와, 5세기, 이와미 유적
일본 고분에는 분구 위에 다양한 물건을 열을 지어 세워 놓습니다. 그 가운데 흙을 구워 만든 것을 하니와(埴輪)라고 합니다. 하니와는 3세기 후반 전방후원분과 함께 등장해 7세기 초 전방후원분의 소멸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위 사진은 이번 전시물 가운데 말 하니와입니다. 기념으로 슬쩍 한 장 찍었습니다.
- 남자 하니와, 6세기, 요쓰즈카 무덤(사진 출처:<일본의 고훈문화> 도록)
남자 하니와입니다.
고훈시대 남성 표현에서 볼 수 있는 윗도리와 바지를 입었습니다. 둥근 챙이 달린 높은 모자를 썼고, 귀에는 커다란 귀걸이를 했습니다. 머리는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갈라 묶은 뒤 둥글게 말아 리본으로 고정해 어깨 아래로 늘어뜨리는 일본 고대 귀족의 머리 모양을 하였습니다. 목깃이 높이 올라오는 윗도리는 왼섶을 안으로 넣어서 여며 입었습니다. 소매에 찬 토시는 손목 주변에 두 줄의 끈을 둘러 고정하였습니다. 배에는 폭이 넓은 띠를 두르고 큰 칼을 찼습니다. 바지 윗부분은 둥글게 부풀고, 아랫부분은 펼쳐져 있는데, 그 경계부에 끈으로 묶어 매듭을 지었습니다.
- 여자 하니와, 6세기, 요쓰즈카 무덤(사진 출처:<일본의 고훈문화> 도록)
포스터에 등장한 여자 하니와입니다.
동시기 여성의 복장인 윗도리와 치마를 입고, 전신에 장신구를 착용하였습니다. 머리 모양은 앞머리를 빗어 올려 둥글게 말고, 다시 뒷머리도 같은 방식으로 말아 올린 뒤 가운데서 두 덩어리를 끈으로 묶고 앞머리에 머리끈으로 고정했습니다. 장신구로는 귓불에 원형 귀걸이를 착용했고, 목과 손목에 염주 형태의 목걸이와 팔찌를 찼습니다. 왼쪽 허리에 단검 형태의 물건을 달았습니다. 윗도리는 통소매이고, 오른쪽 옷섶이 위로 가도록 여며 입었습니다. 치마는 다리를 덮을 정도로 깁니다. 윗도리에는 비늘 모양을 새기고, 치마는 세로줄 무늬로 장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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